건강한 농정 거버넌스를 만들자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 작성일2020/03/05 15:00
- 조회 453
건강한 농정 거버넌스를 만들자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최근 거버넌스(governance)에 대한 논의가 왕성하다. 거버넌스란 협치(協治) 혹은 공치(共治)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민관협치체계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이것이 강조되는 배경에는 우리사회의 다양화, 시민사회의 성장, 지방자치의 진전, 정보화 등으로 과거와 같이 행정주도의 일방적인 정책수립과 집행에 한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지역개발정책을 보더라도 과거에는 행정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정해진 지침에 따라 책정된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이른바 개발독재시대 부족한 하드웨어를 구축하는데는 유효했지만, 이제는 하드웨어의 구축이 지역발전의 관건이 아니고 구축된 하드웨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그리고 이 부문은 행정의 영역이 아니라 시민의 영역 즉, 지역주민의 영역이다. 지역주민의 동의와 참여가 없이는 구축된 시설의 지속적인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획의 수립단계에서부터 지역주민의 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반영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것이 곧 주민참여이다. 주민참여는 계획의 수립단계, 집행단계, 평가단계 등에 따라서 다양한 내용과 형식을 갖는데, 이 모든 것은 행정과정에 대한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고, 이러한 형식적 틀을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다.
주민참여 대안 ‘농어업회의소
현재 농업인 혹은 지역주민의 의견을 행정과정에 반영하는 방안으로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이 「농어업회의소」이다. 즉 농어업·농어촌분야의 민관거버넌스의 구체적인 형식으로서 농어업회의소가 유력한 대안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3개소부터 시작된 농어업회의소 설립논의는 올해 7개를 더해 10개 설립을 목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은 듯 보인다. 그 이유는 첫째, 농어업회의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나서야 할 농업인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인이 주체가 되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일방적인 시혜로 주어지는 농어업회의소는 과거 정부의 필요에 의해 설립된 농협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모든 농업인들이 농어업회의소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주체적으로 나서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농어업회의소와 같은 민관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인식한 행정에서 먼저 나서서 농업인들을 각성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행정의 인식인데, 이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행정에서 농어업회의소 더 나아가 민관거버넌스의 문제를 기존의 프레임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과 민간의 관계를 갑을관계, 관리감독의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파악하는 한 건전한 거버넌스는 성립할 수 없고, 농어업회의소 역시 마찬가지이다. 농업인의 각성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행정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행정이 민간을 바라보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농어업회의소가 설립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허울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이다.
건전한 민관파트너십 전제돼야
진정한 의미에서 거버넌스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파트너십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양자 간에 신뢰, 대등, 책임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행정과 민간이 상호 어느 정도 신뢰하는가, 대등한 입장에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있는가, 공동으로 수행한 사업결과에 대하여 얼마나 책임질 자세가 되어있는가에 따라 건강한 파트너십이 성립할 수 있고, 그래야만 바람직한 거버넌스가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신뢰·대등·책임 원칙 이행 필요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행정에서는 주민을 지시와 복종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민간은 행정을 불신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정책이 실패하더라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행정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농업회의소가 지금까지 우리의 잘못된 민관관계를 바로잡고, 건전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건강한 긴장관계에 기초한 민관거버넌스 구축방안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고민해야 한다. 행정에서도 실적(dotput) 중심이 아니라 성과(outcome)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몇 개의 농어업회의소를 만드는가가 아니라 제대로 된 농어업회의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점검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민관이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건전한 거버넌스는 우리 농어업·농어촌의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출발이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8월 제2458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최근 거버넌스(governance)에 대한 논의가 왕성하다. 거버넌스란 협치(協治) 혹은 공치(共治)라는 의미로, 일반적으로 민관협치체계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이것이 강조되는 배경에는 우리사회의 다양화, 시민사회의 성장, 지방자치의 진전, 정보화 등으로 과거와 같이 행정주도의 일방적인 정책수립과 집행에 한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지역개발정책을 보더라도 과거에는 행정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정해진 지침에 따라 책정된 예산을 집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이른바 개발독재시대 부족한 하드웨어를 구축하는데는 유효했지만, 이제는 하드웨어의 구축이 지역발전의 관건이 아니고 구축된 하드웨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그리고 이 부문은 행정의 영역이 아니라 시민의 영역 즉, 지역주민의 영역이다. 지역주민의 동의와 참여가 없이는 구축된 시설의 지속적인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계획의 수립단계에서부터 지역주민의 의사를 확인하고 이를 반영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것이 곧 주민참여이다. 주민참여는 계획의 수립단계, 집행단계, 평가단계 등에 따라서 다양한 내용과 형식을 갖는데, 이 모든 것은 행정과정에 대한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고, 이러한 형식적 틀을 거버넌스라고 할 수 있다.
주민참여 대안 ‘농어업회의소
현재 농업인 혹은 지역주민의 의견을 행정과정에 반영하는 방안으로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이 「농어업회의소」이다. 즉 농어업·농어촌분야의 민관거버넌스의 구체적인 형식으로서 농어업회의소가 유력한 대안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3개소부터 시작된 농어업회의소 설립논의는 올해 7개를 더해 10개 설립을 목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은 듯 보인다. 그 이유는 첫째, 농어업회의소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관철시키기 위해 나서야 할 농업인 스스로가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인이 주체가 되어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일방적인 시혜로 주어지는 농어업회의소는 과거 정부의 필요에 의해 설립된 농협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모든 농업인들이 농어업회의소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주체적으로 나서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때문에 농어업회의소와 같은 민관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인식한 행정에서 먼저 나서서 농업인들을 각성시켜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는 행정의 인식인데, 이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행정에서 농어업회의소 더 나아가 민관거버넌스의 문제를 기존의 프레임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행정과 민간의 관계를 갑을관계, 관리감독의 주체와 객체의 관계로 파악하는 한 건전한 거버넌스는 성립할 수 없고, 농어업회의소 역시 마찬가지이다. 농업인의 각성이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행정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행정이 민간을 바라보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농어업회의소가 설립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허울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이다.
건전한 민관파트너십 전제돼야
진정한 의미에서 거버넌스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파트너십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양자 간에 신뢰, 대등, 책임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행정과 민간이 상호 어느 정도 신뢰하는가, 대등한 입장에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있는가, 공동으로 수행한 사업결과에 대하여 얼마나 책임질 자세가 되어있는가에 따라 건강한 파트너십이 성립할 수 있고, 그래야만 바람직한 거버넌스가 구축될 수 있는 것이다.
신뢰·대등·책임 원칙 이행 필요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행정에서는 주민을 지시와 복종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민간은 행정을 불신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떤 정책이 실패하더라도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행정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농업회의소가 지금까지 우리의 잘못된 민관관계를 바로잡고, 건전한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이를 토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건강한 긴장관계에 기초한 민관거버넌스 구축방안을 차분하고 냉정하게 고민해야 한다. 행정에서도 실적(dotput) 중심이 아니라 성과(outcome)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 몇 개의 농어업회의소를 만드는가가 아니라 제대로 된 농어업회의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점검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민관이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건전한 거버넌스는 우리 농어업·농어촌의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출발이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8월 제2458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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