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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도시에 텃밭을 가꾸자 | 이태근 지역재단 자문위원, 환경농업단체연합회 회장
    • 작성일2020/03/04 15:51
    • 조회 442
    도시에 텃밭을 가꾸자
    이태근 | 지역재단 자문위원, 환경농업단체연합회 회장


    우리 사회의 식(食) 문화는 어느새 육식 문화로 바뀌었다. 아이들도 고기 없이는 밥을 먹지 않는다. 원래 우리는 논에서 나는 쌀을 주식으로 하고 부족한 단백질은 밭에서 나는 콩으로, 더 부족하면 논에서 나는 물고기로 보충하는 민족이었다. 고기는 생일날이나 명절날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세계 여러 나라가 옥수수와 콩으로 자동차 연료를 만들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농산물 수출국들이 앞다투어 사람이 먹을 식량을 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동차 연료를 만들기 위해 농토를 쓰고 있다. 농업이 제자리를 버리고 돈의 노예로 전락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식량 부족 사태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발 식량위기가 이미 예고되고 있다. 중국은 콩 소비량의 3분의 2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현대 농업은 에너지 집약적이다. 중국의 에너지 위기가 전 세계 석유가격을 폭등시켰고 이것이 나중엔 농산물 가격까지 폭등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국발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가 세계적인 식량 부족사태로 번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선 도시 사람들도 농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가 먹고 입는 것이 어디에서 오는지, 누가 생산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내가 먹고 있는 이 고기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이용해서 내 밥상까지 왔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최소한 내가 먹을 농산물의 일부분이라도 내 손으로 가꾸어보는 운동을 펼쳐야 한다. 거기에 ‘도시의 흙살림 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여볼 수 있을 것이다. 독일 같은 나라에선 이미 활발한 운동이다. 우선 도회지 사람들이 자투리 공간, 이를테면 빈 공터나 화단, 베란다, 옥상 등을 이용해 잎채소나 열매채소들을 길러보는 것이다. 씨 뿌리고 수확하고, 스스로 기른 것을 먹는 과정 속에서 흙의 고마움, 흙의 신비로움을 알게 되면 자연 속 이름없고 보잘것없는 생명체들에 대해서도 따뜻한 시선을 두게 되지 않을까. 그럼 이 사회는 한결 부드럽고 밝고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다. 도시 사람들이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부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도 갖게 된다.

    도회지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텃밭을 만들어 아이들 손으로 자신이 먹을 식단의 일부나마 길러보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공부만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좁쌀보다 작은 씨앗에서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 과정을 직접 보고 경험하게 해서 위대한 생명의 기적을 알게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노동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면 사회도 건강해질 것이다.

    도시와 농촌은 함께 살아야 한다. 도시는 도시대로 쓰레기 넘치고 정이 없는 사회로 가고, 농촌은 농촌대로 노인들만 남고 농사지을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가장 가까운 곳에 해결책이 있다. 누구나 잊고 있었던 것,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원래대로 돌려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누구나 흙의 중요성을 알고 흙을 가꾸는 마음, 그 속에 한국농업, 농촌, 농부의 살길이 있다. 우리 인간이 나아갈 길에 빛을 비춰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조선일보 2007년 1월 13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