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바리시 교훈 잊지 말자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 작성일2020/03/05 14:42
- 조회 475
일본 유바리시 교훈 잊지 말자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지난 2월 말 북해도의 지역개발사업과 사회적 경제, 중간지원조직의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일본 북해도에 다녀왔다. 인상에 남는 여러 지역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유바리 시(市)는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석탄도시→관광도시 전환 성공
유바리는 일본 북해도의 도청이 있는 삿포르에서 동남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188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석탄산업이 번창했을 때는 인구가 한때 12만명에 달했지만, 일본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석탄에서 석유 중심으로 바뀌면서 광산은 쇠퇴했고, 인구도 급격히 줄어들어 작년 말 현재 1만500명으로 격감했다. 당시, 유바리는 석탄산업의 쇠퇴에 따른 지역의 붕괴를 막기 위해 관광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1980년 석탄박물관의 건립을 시작으로 멜론성(城), 호텔, 로봇대과학관, 각종 테마파크, 대규모 리조트 건설과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최 등 2004년까지 ‘석탄에서 관광으로’라는 슬로건 하에 적극적인 관광정책으로 추진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석탄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던 각종 인프라를 시 재정으로 인수했다.
방만경영으로 적자 누적 ‘파산’
이처럼 유바리의 적극적인 관광정책에 힘입어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으며, 지역활성화의 대표적인 모델로 일본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성공사례로 발표됐다. 어둡고 침울한 석탄도시에서 밝고 활기찬 관광도시로 새롭게 태나났다고 홍보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태백이나 정선 등 광산사업의 쇠퇴에 따라 새로운 지역활성화 대책이 필요한 많은 지자체에서 유바리를 배우기 위해 현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평판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6년 그동안 숨겨왔던 유바리의 재정상황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관광·레크레이션 산업이 둔화되면서 그동안 과도한 투자와 방만한 경영으로 적자가 누적됐고,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야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결국 2006년 7월, 유바리는 ‘재정재건단체’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했고, 동년 8월 재정재건단체로 지정됐다. 공식적으로 파산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재정재건단체로 지정된 유바리는 누적된 재정적자액 360억엔을 매년 20억엔씩 총 18년간에 걸쳐 상환하기로 했다. 이러한 부채상환을 위해서는 초긴축재정이 불가피했다. 시가 보유하고 있던 31개의 관광시설 중 29개의 시설을 위탁 운영하거나 매각했으며, 한때 600여명에 달했던 공무원은 이제 100여명으로 줄었다. 7개였던 초·중·고등학교는 1개로 줄어들었다. 시장의 월급은 75%가 삭감됐으며, 직원들의 급여 역시 직급에 따라 30~70%씩 삭감됐다. 시의원은 18명에서 9명으로 줄었고 급여도 31만엔에서 18만엔으로 삭감됐다. 반면에 시민들의 부담은 크게 늘어서 주민세는 1인당 3000엔에서 3500엔으로, 고정 재산세는 1.4%에서 1.45%로, 경자동차세율도 1.4배로 인상됐으며, 그동안 무료였던 온천입욕세(入浴稅)를 신설해 1인당 150엔씩 부과했으며, 하수도사용료는 10㎥당 1470엔에서 2440엔으로 인상됐다. 일자리 축소, 높은 부담, 낮은 사회서비스는 지역인구의 감소로 연결됐고,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도 줄어들어 1993년 230만5000명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8년에는 74만3000명까지 급감했다.
한때 석탄도시에서 관광도시로 전환에 성공한 모범사례로 알려졌던 유바리는 이제 ‘이렇게하면 실패한다’는 대표사례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눈앞의 현안해결에 몰두한 과도한 하드웨어 건설, 시민의 의견을 무시한 관주도의 지역개발, 행정주도의 일방통행을 견제할 수 있는 건전한 시민세력의 부재 등이 유바리의 비극을 초래한 원인이다. 그리고 유비리의 비극적 파산은 고스란히 지역주민의 고통으로 전가되었다.
농촌지역 개발정책 반영 필요
문제는 우리나라에도 유바리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지자체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일본과 지방자치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지자체의 파산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발생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태백이나 정선 등 그동안 유바리를 모델로 대규모 리조트 개발에 몰두해 온 우리 광산도시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태백과 정선 일대를 둘러보고, 우리나라에서도 ‘유바리 사태’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가 누적된다는 대규모 리조트, 겉은 거창하지만 완공 후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는 각종 시설물 등은 ‘유바리’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농촌지역개발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정책당국은 물론이고 현장의 지역리더 역시 유바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3월 제2417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유정규 지역재단 운영이사
지난 2월 말 북해도의 지역개발사업과 사회적 경제, 중간지원조직의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일본 북해도에 다녀왔다. 인상에 남는 여러 지역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유바리 시(市)는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석탄도시→관광도시 전환 성공
유바리는 일본 북해도의 도청이 있는 삿포르에서 동남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1880년대 말부터 1960년대 초까지 석탄산업이 번창했을 때는 인구가 한때 12만명에 달했지만, 일본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석탄에서 석유 중심으로 바뀌면서 광산은 쇠퇴했고, 인구도 급격히 줄어들어 작년 말 현재 1만500명으로 격감했다. 당시, 유바리는 석탄산업의 쇠퇴에 따른 지역의 붕괴를 막기 위해 관광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1980년 석탄박물관의 건립을 시작으로 멜론성(城), 호텔, 로봇대과학관, 각종 테마파크, 대규모 리조트 건설과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최 등 2004년까지 ‘석탄에서 관광으로’라는 슬로건 하에 적극적인 관광정책으로 추진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석탄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던 각종 인프라를 시 재정으로 인수했다.
방만경영으로 적자 누적 ‘파산’
이처럼 유바리의 적극적인 관광정책에 힘입어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으며, 지역활성화의 대표적인 모델로 일본 국내는 물론 국제적인 성공사례로 발표됐다. 어둡고 침울한 석탄도시에서 밝고 활기찬 관광도시로 새롭게 태나났다고 홍보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태백이나 정선 등 광산사업의 쇠퇴에 따라 새로운 지역활성화 대책이 필요한 많은 지자체에서 유바리를 배우기 위해 현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평판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6년 그동안 숨겨왔던 유바리의 재정상황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관광·레크레이션 산업이 둔화되면서 그동안 과도한 투자와 방만한 경영으로 적자가 누적됐고,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야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결국 2006년 7월, 유바리는 ‘재정재건단체’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했고, 동년 8월 재정재건단체로 지정됐다. 공식적으로 파산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재정재건단체로 지정된 유바리는 누적된 재정적자액 360억엔을 매년 20억엔씩 총 18년간에 걸쳐 상환하기로 했다. 이러한 부채상환을 위해서는 초긴축재정이 불가피했다. 시가 보유하고 있던 31개의 관광시설 중 29개의 시설을 위탁 운영하거나 매각했으며, 한때 600여명에 달했던 공무원은 이제 100여명으로 줄었다. 7개였던 초·중·고등학교는 1개로 줄어들었다. 시장의 월급은 75%가 삭감됐으며, 직원들의 급여 역시 직급에 따라 30~70%씩 삭감됐다. 시의원은 18명에서 9명으로 줄었고 급여도 31만엔에서 18만엔으로 삭감됐다. 반면에 시민들의 부담은 크게 늘어서 주민세는 1인당 3000엔에서 3500엔으로, 고정 재산세는 1.4%에서 1.45%로, 경자동차세율도 1.4배로 인상됐으며, 그동안 무료였던 온천입욕세(入浴稅)를 신설해 1인당 150엔씩 부과했으며, 하수도사용료는 10㎥당 1470엔에서 2440엔으로 인상됐다. 일자리 축소, 높은 부담, 낮은 사회서비스는 지역인구의 감소로 연결됐고,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도 줄어들어 1993년 230만5000명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8년에는 74만3000명까지 급감했다.
한때 석탄도시에서 관광도시로 전환에 성공한 모범사례로 알려졌던 유바리는 이제 ‘이렇게하면 실패한다’는 대표사례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눈앞의 현안해결에 몰두한 과도한 하드웨어 건설, 시민의 의견을 무시한 관주도의 지역개발, 행정주도의 일방통행을 견제할 수 있는 건전한 시민세력의 부재 등이 유바리의 비극을 초래한 원인이다. 그리고 유비리의 비극적 파산은 고스란히 지역주민의 고통으로 전가되었다.
농촌지역 개발정책 반영 필요
문제는 우리나라에도 유바리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지자체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일본과 지방자치제도가 다르기 때문에 지자체의 파산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가 발생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태백이나 정선 등 그동안 유바리를 모델로 대규모 리조트 개발에 몰두해 온 우리 광산도시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며칠 전 태백과 정선 일대를 둘러보고, 우리나라에서도 ‘유바리 사태’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가 누적된다는 대규모 리조트, 겉은 거창하지만 완공 후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는 각종 시설물 등은 ‘유바리’가 이미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농촌지역개발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정책당국은 물론이고 현장의 지역리더 역시 유바리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3월 제2417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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