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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살길은 지방자치 개혁과 도농연대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 장관 
    • 작성일2020/03/05 14:41
    • 조회 447
    살길은 지방자치 개혁과 도농연대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전 농림부 장관 


    요즘 경향 각 지역을 다닐 때마다 농업계 지인(知人)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현하 이명박 정권의 트레이드마크(상표)나 다름없는 WTO(세계무역기구) 체제와 FTA(자유무역협정) 시대에 과연 우리나라 농업·농촌·농민과 중소 서민들이 살아남을 방도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라고. 이 정부 들어 숨쉴 틈도 없이 거세게 밀어붙인 여러 강대국들과의 동시다발 무관세 FTA 협정들과 최근의 날치기 한미 FTA 비준사태에 대해 무한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와 기후, 지리, 풍토, 식생, 식관습 문화가 아주 유사한 중국이라는 초강대국과도 FTA를 한다니, 그리 않아도 진작부터 중국산 쌀, 콩, 옥수수와 배추, 김치, 배, 사과는 물론 참깨, 들기름, 닭, 오리 농사 심지어 고사리, 더덕, 도라지 채취 농민들마저 다 죽을 지경인데 아예 대한민국의 땅 위에서 농사와 축산을 모조리 폐업할 작정인지, ‘전직이 유죄’라고 애꿎게 따지고 든다. 이제는 지칠대로 지쳐 기가 막힌지 죽어가는 소리로 한가닥 희망의 대답을 기대하는 모습이 너무나 애처롭고 가슴이 아려온다.

    민생·내치 관한 권한 지방정부로

    지금이라도 우리 정부가 3월 15일로 예정된 한·미 FTA의 발효를 늦추고 농업분야의 무관세 개방항목과 일정, 그리고 협정상의 독소조항을 재조정하자고 미국측에 요구하면 몰라도 우리 대통령께서는 절대 그렇게 하실 분이 아니다. 그리고 한·중 FTA는 이미 중국 정부도 인정한 바 있는 한국농업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식량주권 차원에서 농업조항을 아예 빼고 나머지 경제, 무역자유화 협상을 추진하면 좋겠는데 MB정권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 문제는 미국 정부나 중국 등 외국정부의 태도가 아니라 우리 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와 경세관(經世觀)이다. ‘국익’을 ‘국격’하고 자주 혼동할 만큼 뼛속깊이 친미·친일하시는 분이다. “독도를 다케시마(竹島)라고 일본 중학교 학습해설서에 표기하겠다”는 일본 총리의 통보에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 달라”고 통사정한 대통령이 감히 미국·중국 등 해당 정부에 FTA는 지금은 곤란하다 좀 기다려 달라고 말할 리 없다. 
    이제 우리들 앞에 놓여 있는 농업과 중소상공업의 지속가능한 생존과 생환을 위한 대안(代案)은 크게 보아 두 가지가 남아 있다. 그 하나가 명실상부한 지방자치제의 실현으로 지역경제와 민생을 살리는 안이다. 미국, 캐나다,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선진제국은 지방자치 정부가 행정·입법·사법 3권과 경제·교육·문화·의료·복지 행정에 있어 중앙정부와 거의 비등한 권한과 독자성을 가지고 있고, 더욱이 국가예산 및 세수(稅收) 재정지출에 있어 중앙정부 보다 더 큰 힘을 행사하고 있다. WTO는 중앙정부의 경제·무역정책에 대해서만 구속력 있는 영향력을 미치고 지방정부의 자구적인 차원의 지역발전, 환경 및 민생경제 보호정책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사법·경제·투자제도까지 포괄하는 미국식 FTA 말고는 대부분의 자유무역협정들이 지방정부의 경제정책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선진국들의 세수·재정 및 예산도 중앙 대 지방정부의 비율이 평균 약 2:8 정도이다. 우리나라하고는 정반대이다. 현재 우리 지방자치 정부의 재정력은 광역 시, 도를 제외하고는 실제 재정 수요의 30%도 채 안된다. 244개 지자체 중에 절반이 넘는 124개 지방정부는 자체 세입만으로는 ‘공무원 인건비’도 해결 못하는 열악한 상황이다. 재정자립도가 15% 미만인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수두룩하다. 그리고 선진제국은 우리나라처럼 지자체장과 지방의원들을 해당지역 국회의원들의 ‘문서없는 노예’로 만드는 ‘정당 추천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들 감동시키는 농업돼야 

    결론은 총체적으로 기형적인 현행 지방자치제도를 혁파하여 명실공히 선진국형 지방자치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국회의원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 현행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의 ‘정당 추천제도’는 최소한 기초단체장 선거에선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현재 8:2로 되어 있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력을 동등한 수준으로 끌어 올린 다음 차츰 선진국 수준의 2:8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그래야 지방자치단체가 그 지역의 특성을 살려 올바로 예산을 기획하고 집행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대안은 농업인 자신들의 자구노력이다. 이젠 대통령도 정당 정권도 믿을 것이 못된다. 스스로 살길을 찾되 최종 구매자인 소비자들을 감동시키는 전략목표가 있어야 한다. 농업인은 유기농 명품(名品)을 생산해 내는 명인(名人)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사는 지역을 명소화(名所化)하여 찾아오는 “소비자들을 감동시키는 농업·농촌·농민”이어야 된다. 환경생태계도 살리고 소비자들의 건강과 생명도 챙기는 안전한 친환경 유기농업을 기반으로 삼아 도농협력에 의한 지속적인 소비 구매의 로컬푸드(local food)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천혜의 풍토를 살려 조상대대로 전수되어온 우리나라의 전통식음료는 대부분 발효식품으로서 최근 세계적인 추세인 슬로우 라이프(slow life), 슬로우 푸드(slow food)의 원조격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소비자들이 우리 식품을 더 우대하며 스스로 건강을 돌본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신념이 바로 세계화 시대, FTA 시대를 살아가는 조건불리국가의 삶의 지혜이다. 재정자립도가 20% 대에 불과한 전라남도 도와 시군이 지방자치단체장을 제대로 선출하여 민관이 합심노력한 결과 8년 만에 전국 무농약, 유기농 인증 농산물의 61%를 생산해 내고 1억원 이 상의 농가소득을 내는 농업인을 500여명이나 배출하고 있는 성공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만일 지방분권이 제대로 되어 도와 시군의 재정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넉넉해진다면 그 성과는 가히 눈부실 것이다.

    민생 살아남을 대안 찾아 실현을

    문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대권을 지향하는 중앙무대의 정치지도자들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과 속 좁은 안목이다. 본질적인 대안이 바로 눈앞에 있음에도 보지 못하고 권력만 탐하고 싸움질만 하고 있는 몰골이 안타깝다. 
    이대로라면 새누리당이 집권하든 민주통합당이 집권하든 ‘50보 100보’다. 확실한 것은 WTO/FTA 체제하에서 우리나라 기초생명산업인 농업·농촌·농민 3농의 장래와 중소서민들의 앞날은 더욱 졸아들 전망이다. 사회양극화는 더욱 나빠질 것 같다. 지방 자치의 본질을 외면하는 중앙의 권력자들 등쌀에 민생경제는 더욱 도탄에 빠질지 모른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 모두 바꿔야 한다. 세계화 폭풍에서 우리 민생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들을 찾아내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바꿔야 한다. 한미, 한중 FTA를 찬성하건 반대하건, 우리 농업·농촌·농민을 살리기 위해서 ‘지방분권’을 제대로 바로 세우겠다는 약속을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 여야 대권주자들과 정치가들을 “오, 신이시여, 일깨우소서!”.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2년 3월 제2414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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