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와 농수축산업의 운명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 장관
- 작성일2020/03/05 14:29
- 조회 422
한미FTA와 농수축산업의 운명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 장관
영토, 국민, 주권은 국가존립의 3대 요소이다. 영토로서의 농어촌, 국민으로서의 농어민, 기본주권으로서의 식량주권, 이 세가지(조규일, 2011)가 한·미 FTA로 절단 날 운명에 처해 있다.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노동자, 일반서민들도 직간접으로 된서리를 맞게 될 운명이다.
미국 농무성 경제연구소 분석에 의하면 미국산 농축산물의 대한국 수출액은 연평균 19억3천만달러, 즉 2조876억원씩 증가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15년 동안 31조3140억원이 넘는 미국산 농축산물이 수입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연간 총 단순 농업생산액 약 42조원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반면, 농촌경제연구원은 미국 농축산물이 매년 약 4천억원씩, 15년 동안 약 6조원어치가 수입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미국측의 예상 수치와 비교하여 무려 5배나 낮다. 그러하니 동연구원이 FTA 결과 우리나라 농수산업부문의 생산감소액이 15년간 도합 12조7470억원이라고 예측한 것 또한 적당히 할인된 전망치가 아닌지 의심이 되고 있다. 생산비가 평균 2-4배나 싼 미국산 농축산물의 국내 수입액보다도 우리 농수축산업의 생산감소액이 3배 가까이 적다는 예측은 아무래도 너무 순진하다.
10년 내 모든 농산물 관세 철폐
그리하여 151명의 농촌 출신을 포함한 여당의 결사대 의원들이 최루가스를 무릅쓰고 눈물을 훔치며 통과시킨 한·미 FTA안이 내년 초 발효되면, 그 즉시 38%의 농축수산물이 관세 없이 수입된다. 5년 이내엔 60%가 무관세로 들어온다. 그 후 10년내에 나머지 모든 농축산물이 마찬가지로 관세 없이 개방된다.
한·미 FTA 보다 더 일찍 비준된 FTA들에서는 그런대로 관세폐지 예외품목을 꽤 확보했었다. 한·칠레 FTA에서는 쌀, 사과, 배, 쇠고기 등 29%를 예외품목으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포도의 경우 국내산의 생산출하기에는 수출하지 않기로 약속되었다. 그래서 농업분야의 피해를 당초 예상보다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한·싱가폴 FTA에서는 33.3%, 한·EFTA(유럽자유무역연합)하고는 65.8%, 한·아세안 FTA는 30.9%의 품목을 관세철폐의 예외로 인정받았다. 오로지 한·미 FTA에선 그나마 지킬 것 같았던 쌀과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마저 무관세로 몽땅 내어줄 신세이다. 박근혜씨는 FTA가 소비자물가를 인하할 것이라 좋다고 하면서 ISD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의회 폭거에 용감히 가담한 모양이다. 그런데, 소비자시민의 모임은 무관세로 수입된 칠레산 와인값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무관세로 수입개방된 다른 품목들도 대동소이하다.
국내산 가격 폭락해도 속수무책
한·미 FTA 협정은 그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 농축산물이 홍수처럼 수입되어 국내 농축산물 가격이 폭락할 경우 WTO(세계무역기구)가 허용하는 긴급수입제한조치(SSG/ASG)를 허용한다. 그런데도 한·미 FTA에서는 그 발동요건을 아주 까다롭게 했고 또 품목당 1회에 한해서만 허용하며, 그나마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발동요건은 아예 비현실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수입량이 폭주하여 국산가격이 똥값으로 떨어져도, 문자 그대로 속수무책인 사태가 다반사일지 모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한·미 FTA협정이 발효되면 상당부분의 현행 각종 농업 및 식품관련 지원정책이 자칫 투자자의 소송대상이 된다. 일부는 아예 폐지 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친환경(우리농산물) 학교무상급식조례, 농협의 독점적 납품조달, 농어민 금리보전, 보험과 금융업무상의 특혜, 각 지방자치단체의 특수한 농축산업 지원조치 또는 구매행위 등 안 걸릴 데가 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그 무서운 투자자-국가분쟁 중재제도(ISD)이다.
무엇보다 한·미 FTA가 시행되면 농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이 크게 훼손되어 결국엔 국가의 존립과 삶의 질을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 농업의 다면적인 공익기능은 ‘농림업이 비단 식량과 목재, 섬유원료의 생산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생태계와 기후변화 보전기능,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 완충기능, 수자원 함양기능, 식량주권과 안전성 확보기능, 아름다운 경관유지기능, 지역사회공동체 유지기능, 전통문화보전기능 등등 화폐로 거래할 수 없는 다양한 공익기능’을 포괄하여 말한다. 우리나라 농림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은 화폐가치로 평가할 경우 대략 연간 70조원 이상의 값어치로 계측된다.
일본의 노다 총리가 지난 11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 일본의 조야가 농업생산액 절반이 감소(약 8조엔)하고, 식량자급률이 14% 떨어지며, 그리고 화폐로 평가한 농업의 다원적 가치, 즉, 연간 기준 3조7천억엔이 상실될 것이라고 추계하며 반대를 공론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라성 같은 관변 연구기관들과 경제학자들 어느 누구도 이 같은 연구분석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현재 식량(양곡)자급률이 25%(쌀을 제외할 경우 단지 4.5%)밖에 되지 않아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농지의 용도변경 등 토지제도를 대폭 풀어 놓았으며, 농업정책은 예산 배려마저 4대강사업에 밀려 계속 홀대해 왔는데 이 추세가 계속될 경우, FTA 무관세의 완전개방이 끝나는 15년 후쯤엔 식량자급률이 한 14~15%나 되면 다행일 것 같다. 아마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세계 최하위를 기록할지 모른다.
차라리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앞으로 한 1년간 가만히 계셨으면 싶다. 죽지도 않은 강을 살리겠다고 삼천리강산을 불도저로 뒤집어 놓으시더니, 우리 농업이 자빠져 있지도 않는데 이번 기회에 지도를 잘하여 바로 세우시겠다고, 덴마크처럼 농업수출국가로 키우시겠다 하신다. 턱도 없는 말씀이시다. 우리나라의 대미 농축산물 수출액은 2010년 현재 단 5억1,900만 달러이다. 그것도 라면, 초코파이, 커피, 음료수, 담배 등을 빼고 나면, 순수 국내산인 우리 농축산물과 그 가공식품의 수출액은 몇 푼일지 따지기조차 부끄럽다. 같은 해 한국은 59억6천만달러의 미국 농축산물을 수입했다. 농업부문 대미무역적자만 한해 54억4100만달러이다. 이 수치는 FTA가 발효되기 전 40% 내외의 관세를 물고 수출입된 금액을 비교한 것들이다. 장차 관세마저 철폐되면 어떤 규모의 적자를 볼지 불문가지다.
말씀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총리가 향후 수년간 22조원을 농업피해보전 대책으로 내놓을 때 그 내역이라도 좀 챙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눈을 씻고 보아도 수출농업육성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해마다 국가 전체예산이 4~5%씩 늘어나도, 농림축수산 예산은 실질적으로 줄어들고 있어 22조원은 대부분이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농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말이 대부분의 농업인들에겐 아주 공허하게 들린다. 짐짓 조선일보만 모르고, 기회를 잡아 또다시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침소봉대 보도를 되풀이 할 것이다.
발효 늦추고 농정 틀 새로 짜야
자, 그러면 1년밖에 임기가 남지 않은 이명박 정권하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첫째도 둘째도, 한·미 FTA 발효를 늦추거나 폐기하고 진솔하게 그 피해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의 FTA 협상을 내년 1월 개시하겠다는 것은 농업종결 완결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이 정권 출범 초기 강만수 경제총수가 첫 경제장관회의에서 ‘이제 농업이라는 말은 하지말라’고 한 뜻이 우리나라 농업을 이제 끝내자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시간을 버는 기간 이명박 정부는 현 단계 우리나라 농업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높은 농지가격, 소규모 농가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명실공히 농정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높은 땅값과 소농구조 때문에 가격과 비용 면에서는 한계를 보이고 있는 우리 농축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품질과 안전성’으로 승부하는 생태공동체 농업으로 탈바꿈하여야 살아남는다. 환경도 살리고 기후도 살리고 국민소비자의 건강도 살리며, 농어민의 생존을 보전하는 생명농업의 전국화와 1촌 1가공식음료상품 사업계획의 적극적인 추진 말고는 대안이 없다.
그리고 제발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정책과 기반을 재점검하기 바란다. 세계 최하위권인 우리나라의 식량자주권을 지키기기 위한 비상대책이 필요하다. 만약, 한·미 FTA로 식량주권이 무너질 경우 99%의 국민과 우리 후손들이 두고두고 큰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마저 식량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 나라가 어떻게 국가의 자주를 지킬 수 있느냐고 호언했을까. 북한의 65%에 달하는 초라한 식량자급 모습을 보고 한 말이 아닐성 싶다.
제발 한·미 FTA로 착하디착한 우리 농어민들을 ‘투사’가 아니면 ‘거지’로 몰아넣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서는 아니된다. 전국의 농어민들은 부탁컨대 제발 이 고비를 잘 참고 버티고 땅 팔지 않고 농촌을 떠나지 않으면, 최소한 10-20년 내에 전 세계적으로 농업이 대접받고 농민이 존중받는 그러한 세상이 돌아올 것임을 확신하고 분발하기 바랄 뿐이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1년 제2389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 장관
영토, 국민, 주권은 국가존립의 3대 요소이다. 영토로서의 농어촌, 국민으로서의 농어민, 기본주권으로서의 식량주권, 이 세가지(조규일, 2011)가 한·미 FTA로 절단 날 운명에 처해 있다.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노동자, 일반서민들도 직간접으로 된서리를 맞게 될 운명이다.
미국 농무성 경제연구소 분석에 의하면 미국산 농축산물의 대한국 수출액은 연평균 19억3천만달러, 즉 2조876억원씩 증가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15년 동안 31조3140억원이 넘는 미국산 농축산물이 수입된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연간 총 단순 농업생산액 약 42조원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반면, 농촌경제연구원은 미국 농축산물이 매년 약 4천억원씩, 15년 동안 약 6조원어치가 수입될 것으로 예측하였다. 미국측의 예상 수치와 비교하여 무려 5배나 낮다. 그러하니 동연구원이 FTA 결과 우리나라 농수산업부문의 생산감소액이 15년간 도합 12조7470억원이라고 예측한 것 또한 적당히 할인된 전망치가 아닌지 의심이 되고 있다. 생산비가 평균 2-4배나 싼 미국산 농축산물의 국내 수입액보다도 우리 농수축산업의 생산감소액이 3배 가까이 적다는 예측은 아무래도 너무 순진하다.
10년 내 모든 농산물 관세 철폐
그리하여 151명의 농촌 출신을 포함한 여당의 결사대 의원들이 최루가스를 무릅쓰고 눈물을 훔치며 통과시킨 한·미 FTA안이 내년 초 발효되면, 그 즉시 38%의 농축수산물이 관세 없이 수입된다. 5년 이내엔 60%가 무관세로 들어온다. 그 후 10년내에 나머지 모든 농축산물이 마찬가지로 관세 없이 개방된다.
한·미 FTA 보다 더 일찍 비준된 FTA들에서는 그런대로 관세폐지 예외품목을 꽤 확보했었다. 한·칠레 FTA에서는 쌀, 사과, 배, 쇠고기 등 29%를 예외품목으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포도의 경우 국내산의 생산출하기에는 수출하지 않기로 약속되었다. 그래서 농업분야의 피해를 당초 예상보다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한·싱가폴 FTA에서는 33.3%, 한·EFTA(유럽자유무역연합)하고는 65.8%, 한·아세안 FTA는 30.9%의 품목을 관세철폐의 예외로 인정받았다. 오로지 한·미 FTA에선 그나마 지킬 것 같았던 쌀과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마저 무관세로 몽땅 내어줄 신세이다. 박근혜씨는 FTA가 소비자물가를 인하할 것이라 좋다고 하면서 ISD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나라당의 의회 폭거에 용감히 가담한 모양이다. 그런데, 소비자시민의 모임은 무관세로 수입된 칠레산 와인값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비싸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무관세로 수입개방된 다른 품목들도 대동소이하다.
국내산 가격 폭락해도 속수무책
한·미 FTA 협정은 그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 농축산물이 홍수처럼 수입되어 국내 농축산물 가격이 폭락할 경우 WTO(세계무역기구)가 허용하는 긴급수입제한조치(SSG/ASG)를 허용한다. 그런데도 한·미 FTA에서는 그 발동요건을 아주 까다롭게 했고 또 품목당 1회에 한해서만 허용하며, 그나마 쇠고기와 돼지고기의 발동요건은 아예 비현실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수입량이 폭주하여 국산가격이 똥값으로 떨어져도, 문자 그대로 속수무책인 사태가 다반사일지 모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한·미 FTA협정이 발효되면 상당부분의 현행 각종 농업 및 식품관련 지원정책이 자칫 투자자의 소송대상이 된다. 일부는 아예 폐지 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친환경(우리농산물) 학교무상급식조례, 농협의 독점적 납품조달, 농어민 금리보전, 보험과 금융업무상의 특혜, 각 지방자치단체의 특수한 농축산업 지원조치 또는 구매행위 등 안 걸릴 데가 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그 무서운 투자자-국가분쟁 중재제도(ISD)이다.
무엇보다 한·미 FTA가 시행되면 농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이 크게 훼손되어 결국엔 국가의 존립과 삶의 질을 위태롭게 할지 모른다. 농업의 다면적인 공익기능은 ‘농림업이 비단 식량과 목재, 섬유원료의 생산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생태계와 기후변화 보전기능, 홍수 가뭄 등 자연재해 완충기능, 수자원 함양기능, 식량주권과 안전성 확보기능, 아름다운 경관유지기능, 지역사회공동체 유지기능, 전통문화보전기능 등등 화폐로 거래할 수 없는 다양한 공익기능’을 포괄하여 말한다. 우리나라 농림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은 화폐가치로 평가할 경우 대략 연간 70조원 이상의 값어치로 계측된다.
일본의 노다 총리가 지난 11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 일본의 조야가 농업생산액 절반이 감소(약 8조엔)하고, 식량자급률이 14% 떨어지며, 그리고 화폐로 평가한 농업의 다원적 가치, 즉, 연간 기준 3조7천억엔이 상실될 것이라고 추계하며 반대를 공론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라성 같은 관변 연구기관들과 경제학자들 어느 누구도 이 같은 연구분석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현재 식량(양곡)자급률이 25%(쌀을 제외할 경우 단지 4.5%)밖에 되지 않아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농지의 용도변경 등 토지제도를 대폭 풀어 놓았으며, 농업정책은 예산 배려마저 4대강사업에 밀려 계속 홀대해 왔는데 이 추세가 계속될 경우, FTA 무관세의 완전개방이 끝나는 15년 후쯤엔 식량자급률이 한 14~15%나 되면 다행일 것 같다. 아마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세계 최하위를 기록할지 모른다.
차라리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앞으로 한 1년간 가만히 계셨으면 싶다. 죽지도 않은 강을 살리겠다고 삼천리강산을 불도저로 뒤집어 놓으시더니, 우리 농업이 자빠져 있지도 않는데 이번 기회에 지도를 잘하여 바로 세우시겠다고, 덴마크처럼 농업수출국가로 키우시겠다 하신다. 턱도 없는 말씀이시다. 우리나라의 대미 농축산물 수출액은 2010년 현재 단 5억1,900만 달러이다. 그것도 라면, 초코파이, 커피, 음료수, 담배 등을 빼고 나면, 순수 국내산인 우리 농축산물과 그 가공식품의 수출액은 몇 푼일지 따지기조차 부끄럽다. 같은 해 한국은 59억6천만달러의 미국 농축산물을 수입했다. 농업부문 대미무역적자만 한해 54억4100만달러이다. 이 수치는 FTA가 발효되기 전 40% 내외의 관세를 물고 수출입된 금액을 비교한 것들이다. 장차 관세마저 철폐되면 어떤 규모의 적자를 볼지 불문가지다.
말씀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는 못할지언정 최소한 총리가 향후 수년간 22조원을 농업피해보전 대책으로 내놓을 때 그 내역이라도 좀 챙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눈을 씻고 보아도 수출농업육성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해마다 국가 전체예산이 4~5%씩 늘어나도, 농림축수산 예산은 실질적으로 줄어들고 있어 22조원은 대부분이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농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말이 대부분의 농업인들에겐 아주 공허하게 들린다. 짐짓 조선일보만 모르고, 기회를 잡아 또다시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고 침소봉대 보도를 되풀이 할 것이다.
발효 늦추고 농정 틀 새로 짜야
자, 그러면 1년밖에 임기가 남지 않은 이명박 정권하에서 무엇을 기대할까. 첫째도 둘째도, 한·미 FTA 발효를 늦추거나 폐기하고 진솔하게 그 피해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과의 FTA 협상을 내년 1월 개시하겠다는 것은 농업종결 완결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이 정권 출범 초기 강만수 경제총수가 첫 경제장관회의에서 ‘이제 농업이라는 말은 하지말라’고 한 뜻이 우리나라 농업을 이제 끝내자는 것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시간을 버는 기간 이명박 정부는 현 단계 우리나라 농업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높은 농지가격, 소규모 농가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명실공히 농정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높은 땅값과 소농구조 때문에 가격과 비용 면에서는 한계를 보이고 있는 우리 농축산업의 국제경쟁력을 ‘품질과 안전성’으로 승부하는 생태공동체 농업으로 탈바꿈하여야 살아남는다. 환경도 살리고 기후도 살리고 국민소비자의 건강도 살리며, 농어민의 생존을 보전하는 생명농업의 전국화와 1촌 1가공식음료상품 사업계획의 적극적인 추진 말고는 대안이 없다.
그리고 제발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정책과 기반을 재점검하기 바란다. 세계 최하위권인 우리나라의 식량자주권을 지키기기 위한 비상대책이 필요하다. 만약, 한·미 FTA로 식량주권이 무너질 경우 99%의 국민과 우리 후손들이 두고두고 큰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오죽했으면 미국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마저 식량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공급하지 못한 나라가 어떻게 국가의 자주를 지킬 수 있느냐고 호언했을까. 북한의 65%에 달하는 초라한 식량자급 모습을 보고 한 말이 아닐성 싶다.
제발 한·미 FTA로 착하디착한 우리 농어민들을 ‘투사’가 아니면 ‘거지’로 몰아넣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서는 아니된다. 전국의 농어민들은 부탁컨대 제발 이 고비를 잘 참고 버티고 땅 팔지 않고 농촌을 떠나지 않으면, 최소한 10-20년 내에 전 세계적으로 농업이 대접받고 농민이 존중받는 그러한 세상이 돌아올 것임을 확신하고 분발하기 바랄 뿐이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1년 제2389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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