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장관
- 작성일2020/03/0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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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장관
하늘은 인간사회에 징벌을 내리거나 개벽을 불러 올 때 여러 갈래로 전조(前兆)를 보낸다고 한다. 미리 징조를 보여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대오각성케 한다. 다만, 어리석은 사회, 아둔한 지도자들은 징조들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
아이들 밥 문제로 주민 투표라니
아니,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거나, 다른 사건, 다른 이벤트로 물타기를 하여 그 뜻을 흐려 놓는다. 교활한 자일수록 하늘의 경고를 비틀어 해석하기 일쑤다. 심지어 기득권 지키기와 탐욕 키우기에 골몰하는 자들은 엄연한 징조를 자기 합리화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한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나쁜 정파, 엉큼한 정상배, 못된 언론들이 더욱 날뛰게 된다. 그들이 흔히 쓰는 수법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체제반대파(예, 좌파) 또는 선동가라고 몰아붙여 매장시킨다. 요즘말로는 ‘포퓨리즘’ 또는 ‘포퓨리스트’라 폄하하고 자기들은 빠져 나간다. 좌파니, 포퓨리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정치가, 기업가, 언론인들의 공통점은 기득권과 탐욕을 사수하기 위한 국익(國益), 국민을 앞세운 자기합리화다. 사회가 아무리 양극화가 심해지고 붕괴일로여도, 나라가 송두리째 뿌리가 뽑혀 무너져 내려도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오히려 이를 걱정하고 나무라는 사람들마저 씨를 말려 없애려 든다. 그리하여 피해자는 더욱 박해를 받고 사회는 더욱 양극화로 치닫는다.
연간 소득이 몇백억원이 넘는 대기업 재벌들과, 정치지도자 몇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어린 학생들을 위한 친환경 유기농 의무급식 움직임을 낙동강 방어선에 비유하며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을 선동한다. 높은 대학등록금을 낮추어 달라는 대학생과 시민들의 촛불시위를 가리켜 좌파 운운하며 신경을 곤두세운다. 차기 대권을 바라본다는 어느 정치지도자는 초등 5학년 이상의 친환경 의무급식 즉시 시행을 반대하며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는 주민투표를 서두르고 있다. 주민투표비용은 약 180억원으로 추가로 소요될 급식비의 거의 반이나 차지하는데도 교언영색(巧言令色)이다. 그동안 친환경 의무급식을 반대하는 홍보비용만으로도 이미 수십억원을 썼다고 한다. 아동들이 먹는 밥 문제를 가지고 거금을 써가며 주민투표를 하자는 나라는, 과문이지만, 하늘아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뿐일 것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 부자와 기업들을 위한 연달은 감세정책의 혜택으로 천문학적인 사내 유보금을 적립해 놓고도 이들 재벌 대표들은 도리어 애꿎은 반값 등록금공약 이행 요구시위를 규탄하고 어린 아동들을 위한 친환경 유기농 의무급식의 제동걸기에 몰두하고 있다.
때마침 프랑스 파리에서는 G20 농업장관회의에 임하여 유럽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말라”는 구호와 피켓을 높이 쳐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과 재벌들의 눈높이로 보자면 대학교육까지 무상교육을 받는 이들 유럽 젊은이들은 모두 좌파이며 사회악인 모양이다. 강 파기, 땅 파기에는 연간 10조원씩 매년 퍼부으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는데 쓰일 5조~6조원을 조달할 수 없다고 한다. 한강을 르네상스한다고 국적불명의 기괴한 건물을 짓는 데만 수백억을 쓰겠다면서 어린 학생들의 친환경 의무학교급식에 대하여는 주민투표로 결정하자고 한다. 강남의 부자들이 궐기해서 반대투표를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강남특별시장이라는 타이틀로 대권을 거머쥐겠다는 것인가.
농림축수산식품 ‘수입부’로 변질
지금 조국의 산하에 갖가지 자연재앙이 몰아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서로 총칼을 겨눠야 했던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6.25 전쟁의 비극적인 상징물인 칠곡 왜관의 ‘호국의 다리’가 하필이면 6.25 날 새벽 무너져 내렸다. 그것도 6.25 전쟁 중 미군이 폭파시킨 제2교각 부근이 쓸려 내렸다.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본류와 지천들이 만나는 곳마다 불어나는 빗물을 자연스레 흘러 보내지 못한 결과라고 한다. 다른 한편, 올해 초까지 구제역병이 호남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확산돼 단군 이래 최대인 350여만 마리의 소, 돼지를 상당수 생축으로 땅에 묻어야만 했다. 어리석은 방역행정, 인재(人災) 탓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무리 무관세로 세계 각 곳에서 수입해 들여와도 돼지고기 값은 내릴 줄 모른다. 반대로, 수입급증으로 한 번 폭락을 한 한우값은 내리기만 하지 전혀 오를 줄 모른다. 이래저래 멍이 든 축산농가들에게 그나마 보상으로 나온 살처분 보상금에도 세금을 매긴다니 소잃고 외양간만 지키는 농민들의 수심은 더욱 깊어만 간다. 각종 채소류와 과일 가격 역시 이상기후로 오르기라도 할 기세면 정부가 앞장서 마구잡이 무관세 수입을 재촉한다.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한 때 배추값은 단군 이래 최고의 가격, 포기당 1만6000원까지 치솟더니 올 봄에는 사상 유례가 없을 가격 폭락으로 밭을 갈아엎은 농가들이 부지기수 생겨났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저가의 수입 쌀을 시중에 방출해도 한 번 오른 쌀값은 요지부동이다. 정부대책은 오로지 ‘무관세 수입자유화’이다. 농업 ‘생산부’인지, 농림축수산식품 ‘수입부’ 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변질돼 가고 있다.
오늘날 시장경제 자본주의 제도는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괜찮은 경제체제로서 이 지구상에서 사회주의를 완전히 제압하고 공산주의를 몰아 낼만큼 역사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배경을 보면, 지난 두세기 동안 사회주의의 장점들을 자본주의가 시장경제 체제내로 흡수, 운용해 온 포용정책의 결과다. 반면, 사회주의 체제는 화석처럼 경직되어 교조적인 원칙과 체제 지상주의에 고착되어 정체를 거듭해왔기 때문에 망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의 꽃이라 말하는 중소기업자, 노동자, 농민들에 의한 각종 협동조합 운동이라든지, 정부권력의 개입에 의한 ‘반독점 공정거래’ 유지정책들은 원래 순수자본주의에는 없었고 사회주의 정책을 시장경제에 도입, 적용한 것들이다. 아무리 적대적인 체제일지라도 좋은 제도는 상대방에서 서슴없이 배워 온 자본주의체제의 용기와 포용정책 때문에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해 온 것이다.
노동자·농민 주장에 귀 기울여야
마찬가지로 보수(保守)를 살리고 기득권을 지키려면 권력자, 부자, 기득권층일수록 그 반대편의 주장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것은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서민 노동자 농민 빈곤층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 후자들을 아무리 배척하고 좌파로 몰아봐야 사회양극화만 부추기고 사회 불안정을 재촉한다. 그리고 부메랑이 되어 보수 우파 기득권층의 단명(短命)을 초래한다. ‘따뜻한’ 보수, 얼굴을 가진 보수가 필요하다. 요즘대로 나가다간 다시는 재벌 출신, 불도저식 기업인(자칭 CEO)들을 나라의 지도자로 뽑아서는 아니 되겠다는 각성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당신들만의 천국’이 얼마나 오래갈지, 서민, 노동자, 농민, 빈곤층을 양산하는 정책만으로 얼마나 나라(國政)를 오래 지탱할지, 당해보고 나서야 깨닫는다면 누군들 장(長) 노릇을 못할까. 아, 올챙이들이 개구리가 된지 몇 해나 되었다고 세상에 먹을 것을 가지고 투표 장난까지 하겠다는건지.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1년 제2349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전 농림부장관
하늘은 인간사회에 징벌을 내리거나 개벽을 불러 올 때 여러 갈래로 전조(前兆)를 보낸다고 한다. 미리 징조를 보여주어 사람들로 하여금 대오각성케 한다. 다만, 어리석은 사회, 아둔한 지도자들은 징조들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다.
아이들 밥 문제로 주민 투표라니
아니,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거나, 다른 사건, 다른 이벤트로 물타기를 하여 그 뜻을 흐려 놓는다. 교활한 자일수록 하늘의 경고를 비틀어 해석하기 일쑤다. 심지어 기득권 지키기와 탐욕 키우기에 골몰하는 자들은 엄연한 징조를 자기 합리화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한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나쁜 정파, 엉큼한 정상배, 못된 언론들이 더욱 날뛰게 된다. 그들이 흔히 쓰는 수법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을 체제반대파(예, 좌파) 또는 선동가라고 몰아붙여 매장시킨다. 요즘말로는 ‘포퓨리즘’ 또는 ‘포퓨리스트’라 폄하하고 자기들은 빠져 나간다. 좌파니, 포퓨리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정치가, 기업가, 언론인들의 공통점은 기득권과 탐욕을 사수하기 위한 국익(國益), 국민을 앞세운 자기합리화다. 사회가 아무리 양극화가 심해지고 붕괴일로여도, 나라가 송두리째 뿌리가 뽑혀 무너져 내려도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 오히려 이를 걱정하고 나무라는 사람들마저 씨를 말려 없애려 든다. 그리하여 피해자는 더욱 박해를 받고 사회는 더욱 양극화로 치닫는다.
연간 소득이 몇백억원이 넘는 대기업 재벌들과, 정치지도자 몇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어린 학생들을 위한 친환경 유기농 의무급식 움직임을 낙동강 방어선에 비유하며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을 선동한다. 높은 대학등록금을 낮추어 달라는 대학생과 시민들의 촛불시위를 가리켜 좌파 운운하며 신경을 곤두세운다. 차기 대권을 바라본다는 어느 정치지도자는 초등 5학년 이상의 친환경 의무급식 즉시 시행을 반대하며 동서고금에 유례가 없는 주민투표를 서두르고 있다. 주민투표비용은 약 180억원으로 추가로 소요될 급식비의 거의 반이나 차지하는데도 교언영색(巧言令色)이다. 그동안 친환경 의무급식을 반대하는 홍보비용만으로도 이미 수십억원을 썼다고 한다. 아동들이 먹는 밥 문제를 가지고 거금을 써가며 주민투표를 하자는 나라는, 과문이지만, 하늘아래 대한민국 서울특별시뿐일 것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 부자와 기업들을 위한 연달은 감세정책의 혜택으로 천문학적인 사내 유보금을 적립해 놓고도 이들 재벌 대표들은 도리어 애꿎은 반값 등록금공약 이행 요구시위를 규탄하고 어린 아동들을 위한 친환경 유기농 의무급식의 제동걸기에 몰두하고 있다.
때마침 프랑스 파리에서는 G20 농업장관회의에 임하여 유럽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말라”는 구호와 피켓을 높이 쳐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과 재벌들의 눈높이로 보자면 대학교육까지 무상교육을 받는 이들 유럽 젊은이들은 모두 좌파이며 사회악인 모양이다. 강 파기, 땅 파기에는 연간 10조원씩 매년 퍼부으면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낮추는데 쓰일 5조~6조원을 조달할 수 없다고 한다. 한강을 르네상스한다고 국적불명의 기괴한 건물을 짓는 데만 수백억을 쓰겠다면서 어린 학생들의 친환경 의무학교급식에 대하여는 주민투표로 결정하자고 한다. 강남의 부자들이 궐기해서 반대투표를 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강남특별시장이라는 타이틀로 대권을 거머쥐겠다는 것인가.
농림축수산식품 ‘수입부’로 변질
지금 조국의 산하에 갖가지 자연재앙이 몰아치고 있다. 우리 민족이 서로 총칼을 겨눠야 했던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6.25 전쟁의 비극적인 상징물인 칠곡 왜관의 ‘호국의 다리’가 하필이면 6.25 날 새벽 무너져 내렸다. 그것도 6.25 전쟁 중 미군이 폭파시킨 제2교각 부근이 쓸려 내렸다.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 본류와 지천들이 만나는 곳마다 불어나는 빗물을 자연스레 흘러 보내지 못한 결과라고 한다. 다른 한편, 올해 초까지 구제역병이 호남과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확산돼 단군 이래 최대인 350여만 마리의 소, 돼지를 상당수 생축으로 땅에 묻어야만 했다. 어리석은 방역행정, 인재(人災) 탓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아무리 무관세로 세계 각 곳에서 수입해 들여와도 돼지고기 값은 내릴 줄 모른다. 반대로, 수입급증으로 한 번 폭락을 한 한우값은 내리기만 하지 전혀 오를 줄 모른다. 이래저래 멍이 든 축산농가들에게 그나마 보상으로 나온 살처분 보상금에도 세금을 매긴다니 소잃고 외양간만 지키는 농민들의 수심은 더욱 깊어만 간다. 각종 채소류와 과일 가격 역시 이상기후로 오르기라도 할 기세면 정부가 앞장서 마구잡이 무관세 수입을 재촉한다. 중국산이 대부분이다. 한 때 배추값은 단군 이래 최고의 가격, 포기당 1만6000원까지 치솟더니 올 봄에는 사상 유례가 없을 가격 폭락으로 밭을 갈아엎은 농가들이 부지기수 생겨났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저가의 수입 쌀을 시중에 방출해도 한 번 오른 쌀값은 요지부동이다. 정부대책은 오로지 ‘무관세 수입자유화’이다. 농업 ‘생산부’인지, 농림축수산식품 ‘수입부’ 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변질돼 가고 있다.
오늘날 시장경제 자본주의 제도는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괜찮은 경제체제로서 이 지구상에서 사회주의를 완전히 제압하고 공산주의를 몰아 낼만큼 역사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 배경을 보면, 지난 두세기 동안 사회주의의 장점들을 자본주의가 시장경제 체제내로 흡수, 운용해 온 포용정책의 결과다. 반면, 사회주의 체제는 화석처럼 경직되어 교조적인 원칙과 체제 지상주의에 고착되어 정체를 거듭해왔기 때문에 망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의 꽃이라 말하는 중소기업자, 노동자, 농민들에 의한 각종 협동조합 운동이라든지, 정부권력의 개입에 의한 ‘반독점 공정거래’ 유지정책들은 원래 순수자본주의에는 없었고 사회주의 정책을 시장경제에 도입, 적용한 것들이다. 아무리 적대적인 체제일지라도 좋은 제도는 상대방에서 서슴없이 배워 온 자본주의체제의 용기와 포용정책 때문에 자본주의가 크게 발전해 온 것이다.
노동자·농민 주장에 귀 기울여야
마찬가지로 보수(保守)를 살리고 기득권을 지키려면 권력자, 부자, 기득권층일수록 그 반대편의 주장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좋은 것은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서민 노동자 농민 빈곤층을 품을 줄 알아야 한다. 후자들을 아무리 배척하고 좌파로 몰아봐야 사회양극화만 부추기고 사회 불안정을 재촉한다. 그리고 부메랑이 되어 보수 우파 기득권층의 단명(短命)을 초래한다. ‘따뜻한’ 보수, 얼굴을 가진 보수가 필요하다. 요즘대로 나가다간 다시는 재벌 출신, 불도저식 기업인(자칭 CEO)들을 나라의 지도자로 뽑아서는 아니 되겠다는 각성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당신들만의 천국’이 얼마나 오래갈지, 서민, 노동자, 농민, 빈곤층을 양산하는 정책만으로 얼마나 나라(國政)를 오래 지탱할지, 당해보고 나서야 깨닫는다면 누군들 장(長) 노릇을 못할까. 아, 올챙이들이 개구리가 된지 몇 해나 되었다고 세상에 먹을 것을 가지고 투표 장난까지 하겠다는건지.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1년 제2349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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