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떼죽음과 인간의 오만 | 윤석원 중앙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1:37
- 조회 442
동물 떼죽음과 인간의 오만
| 윤석원 중앙대 교수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전 지구적 환경 재앙을 수년전부터 목도하며 살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의한 이상 기후, 생물종 다양성의 축소, 오존층의 고갈, 사막화, 물 부족, 산림황폐화, 기아와 기근 등이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아둔한 인류는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최근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지구 환경의 구체적인 이상 현상은 더 이상 그럭저럭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벌과 물고기와 새의 떼죽음은 뭔가 심각한 상황들이 인류의 목전에 다가 온 게 아닌가 하는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꿀벌의 ‘군집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에 휘말리고 2008년 미국에 생존하는 꿀벌의 3분의 1이 집단으로 괴사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은바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2009년부터 꿀벌 집단괴사가 몇몇 양봉농가에서 발생했고, 2010년에는 대부분의 양봉농가가 꿀벌통을 소각하는 사태를 맞이하고야 말았다. 꿀벌의 괴사는 모든 식물들의 생존을 위협하게 돼 결국 생태계 전체의 위기로 연결되고 이는 결국 인류의 생존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명쾌한 원인규명 안돼 불안 확산
언론보도에 의하면 2010년 12월 31일 미국 아칸소주 비브시에서는 죽은 찌르레기 5000여 마리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고, 지난 5일 스웨덴의 팔최핑이라는 마을에서는 죽은 갈까마귀 100여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같은 날 미국 루이지애나주 포인트 쿠피패리시에서는 붉은어깨찌르레기 500마리가 죽은 채로 도로 위에 떨어졌고, 펜실베이니아주 길버츠빌에서도 찌르레기와 울새 수백마리가 떨어졌다.
새떼뿐만 아니라 물고기도 떼죽음을 당한 채 발견되고 있다. 아칸소주에서 죽은 찌르레기가 떼죽음 당하기 바로 전날인 지난해 12월 30일 드럼피시 10만 마리가 죽은 채 아칸소강 위로 떠올랐다. 뒤이어 브라질 남부 파라나구아 해안에서는 정어리와 흑조기, 메기 등 약 100톤의 물고기들이 한꺼번에 떠올랐고, 미국 플로리다의 작은 만에서도 죽은 물고기 수천마리가 떠다니는 모습이 목격됐다. 뉴질랜드에서도 6일 물고기 집단폐사가 보고됐고, 영국에서는 켄트 해안을 따라 약 4만마리의 꽃게들이 떼죽음을 당한 모습이 발견됐다.
초자연적 현상에 인류는 무기력
이와 같이 2011년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불과 일주일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11개국에서 30여건의 조류·어류 떼죽음이 보고됐다. 발생 국가는 미국, 스웨덴, 영국, 브라질, 뉴질랜드, 일본, 태국 등 전 지구적이다. 검색엔진 구글은 6일 ‘동물 떼죽음(mass animal deaths)’ 지도 서비스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야생동물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불과 일주일 사이에 전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물들의 떼죽음의 원인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오염물질이나 공장의 유독가스, 소닉 붐(sonic boom·항공기의 음속 돌파 폭발음), 외계인의 공격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나 명쾌한 원인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고 각종 설(說)들이 난무하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들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명확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로켓을 우주에 쏘아대고 손바닥보다 작은 스마트폰으로 여러 가지 일을 다하는 첨단 과학의 시대임에도 인류는 동물들의 갑작스런 떼죽음에 대한 원인조차 명쾌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쌓아 올린 경이로운 과학적 발달과 경제적 발전이라고 하는 것이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는 너무나 작아 보인다.
자연의 경고 겸허하게 인식해야
지구와 인류의 종말이 지금인지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들의 오만함이다.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부를 위해서는 자연을 함부로 훼손해도 되고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대한 자연의 경고에 대해 너무나 무감각하다. 이제 인류 모두가 함께 살고 함께 가꾸어 가야할 곳이 이 지구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식해야하지 않을까.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1년 제2305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윤석원 중앙대 교수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전 지구적 환경 재앙을 수년전부터 목도하며 살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의한 이상 기후, 생물종 다양성의 축소, 오존층의 고갈, 사막화, 물 부족, 산림황폐화, 기아와 기근 등이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아둔한 인류는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최근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지구 환경의 구체적인 이상 현상은 더 이상 그럭저럭 넘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벌과 물고기와 새의 떼죽음은 뭔가 심각한 상황들이 인류의 목전에 다가 온 게 아닌가 하는 심각한 우려를 낳게 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꿀벌의 ‘군집붕괴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에 휘말리고 2008년 미국에 생존하는 꿀벌의 3분의 1이 집단으로 괴사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은바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2009년부터 꿀벌 집단괴사가 몇몇 양봉농가에서 발생했고, 2010년에는 대부분의 양봉농가가 꿀벌통을 소각하는 사태를 맞이하고야 말았다. 꿀벌의 괴사는 모든 식물들의 생존을 위협하게 돼 결국 생태계 전체의 위기로 연결되고 이는 결국 인류의 생존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명쾌한 원인규명 안돼 불안 확산
언론보도에 의하면 2010년 12월 31일 미국 아칸소주 비브시에서는 죽은 찌르레기 5000여 마리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렸고, 지난 5일 스웨덴의 팔최핑이라는 마을에서는 죽은 갈까마귀 100여마리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같은 날 미국 루이지애나주 포인트 쿠피패리시에서는 붉은어깨찌르레기 500마리가 죽은 채로 도로 위에 떨어졌고, 펜실베이니아주 길버츠빌에서도 찌르레기와 울새 수백마리가 떨어졌다.
새떼뿐만 아니라 물고기도 떼죽음을 당한 채 발견되고 있다. 아칸소주에서 죽은 찌르레기가 떼죽음 당하기 바로 전날인 지난해 12월 30일 드럼피시 10만 마리가 죽은 채 아칸소강 위로 떠올랐다. 뒤이어 브라질 남부 파라나구아 해안에서는 정어리와 흑조기, 메기 등 약 100톤의 물고기들이 한꺼번에 떠올랐고, 미국 플로리다의 작은 만에서도 죽은 물고기 수천마리가 떠다니는 모습이 목격됐다. 뉴질랜드에서도 6일 물고기 집단폐사가 보고됐고, 영국에서는 켄트 해안을 따라 약 4만마리의 꽃게들이 떼죽음을 당한 모습이 발견됐다.
초자연적 현상에 인류는 무기력
이와 같이 2011년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불과 일주일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11개국에서 30여건의 조류·어류 떼죽음이 보고됐다. 발생 국가는 미국, 스웨덴, 영국, 브라질, 뉴질랜드, 일본, 태국 등 전 지구적이다. 검색엔진 구글은 6일 ‘동물 떼죽음(mass animal deaths)’ 지도 서비스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야생동물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불과 일주일 사이에 전 세계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물들의 떼죽음의 원인에 대해서 과학자들은 오염물질이나 공장의 유독가스, 소닉 붐(sonic boom·항공기의 음속 돌파 폭발음), 외계인의 공격 등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나 명쾌한 원인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고 각종 설(說)들이 난무하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들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명확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로켓을 우주에 쏘아대고 손바닥보다 작은 스마트폰으로 여러 가지 일을 다하는 첨단 과학의 시대임에도 인류는 동물들의 갑작스런 떼죽음에 대한 원인조차 명쾌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쌓아 올린 경이로운 과학적 발달과 경제적 발전이라고 하는 것이 초자연적 현상 앞에서는 너무나 작아 보인다.
자연의 경고 겸허하게 인식해야
지구와 인류의 종말이 지금인지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간들의 오만함이다. 경제성장과 물질적인 부를 위해서는 자연을 함부로 훼손해도 되고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대한 자연의 경고에 대해 너무나 무감각하다. 이제 인류 모두가 함께 살고 함께 가꾸어 가야할 곳이 이 지구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식해야하지 않을까.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1년 제2305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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