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살처분이 옳은 대책인가 | 장상환 경상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1:35
- 조회 447
구제역, 살처분이 옳은 대책인가
| 장상환 경상대 교수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처음 확인된 구제역이 경기지역까지 확산되면서 전국에 구제역 비상이 걸렸다. 올해에만 1~3월과 4~5월에 이어 세 번째 발생이다. 매번 해결책은 선제적 ‘살처분’이었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4~5월 발생한 구제역으로 총 11개 농가에서 5만여두의 우제류가 살처분됐고, 총 1242억원의 국비가 소요됐다. 현재 살처분 대상 우제류는 15만2400여두로, 이 가운데 14만8400여두가 매몰 처리됐고 이에 소요되는 재정만 4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매번 해결책은 살처분…예외 없어
대규모의 선제적 살처분의 선진국은 영국이다. 영국에서는 2001년 당시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1000여만 마리의 가축이 도살됐고 850억 파운드(160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회복하려 한 것은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위상이었다.
백신 접종해 확산 방지 ‘합리적’
그러나 살처분이 구제역에 대해 과연 옳은 대응책인지 의문이다. 앤드류 니키포룩의 저서 ‘대혼란’에 따르면 구제역은 식품안전이나 인간의 건강을 전혀 위협하지 않는 바이러스다. 구제역에 걸리면 가축은 발과 입이 몹시 아파 먹지 못하고 나이어린 짐승은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치사율은 1%밖에 안된다. 대부분의 짐승은 보름 안에 건강을 회복한다. 축산이 산업화되기 이전 수백년 동안 구제역 바이러스는 대수롭지 않은 직업병 정도로 취급됐다. 병이 돌기 시작하면 농장 입구에 죽은 소의 머리를 걸어둬 가축상인이나 방문객의 접근을 막고, 소들에게 따뜻한 쇠죽과 부드러운 건초를 먹여 회복시켰다. 제대로 돌보기만 하면 병은 완치됐다. 그러다가 축산이 산업화되고 국제 교역이 확대되면서 1940년대부터 잔혹한 살처분 정책을 실시했고, 그 뒤 다른 구제역 발생국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채택했다.
2002년 유럽의회가 펴낸 진상조사보고서에 의하면 구제역이 심각한 전염병이 된 이유는 유전적 다양성의 축소와 저가 대량생산의 공장형 축산의 보편화, 늘어나는 무역량, 대형슈퍼ㆍ체인의 확대에 따른 동물의 이동량 증가 등이다. 1967년 발생 시에는 영국의 일부지구에 한정됐지만 2001년에는 겨우 2주 동안에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로 단번에 확대된 데는 이런 요인들과 관련이 있다.
소나 돼지를 열악한 환경에서 공장식으로 대량으로 사육하면 전염병이 급속히 번진다. 해외여행과 상품 무역의 확대로 바이러스 감염요소가 쉽게 유입된다. 롯데마트 통큰치킨 판매를 통해서 드러났듯이 대규모 슈퍼마켓은 농산물가격 인하 압력을 통해 공장형 축산과 농산물 수출입을 부추긴다. 그리고 대규모 살처분이 보편적 대응책이 된 이유는 식품 무역상, 농업관련 로비스트들이 다국적 축산거래에 제약이 생길까봐 살처분 조치를 지지한 때문이다.
구제역 확대에는 대규모의 예방적 살처분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구제역 발생지역 가축에 대한 백신 접종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런데 왜 백신을 사용하지 않을까? 이것도 구제역 청정국의 위상 회복이라는 허울 좋은 목표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백신을 쓰면 일시적으로는 증상이 없어지나 환경이 변하거나 하면 다시 발병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축산물 수출에 어려움이 생긴다. 구제역은 근절의 대상이고 청정단계로 가는 것이 목표다”라고 한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고 농가경제를 곤경에 몰아넣는 대규모 살처분을 반복해도 구제역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축산물 수입이 수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의 경우는 백신을 접종해 확산을 막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이다.
또한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국경과 국내 지역간에 동식물 검역을 강화해야 한다. WTO 체제는 동식물검역의 기준을 국제적으로 통일함으로써 식품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국제가축보건기구(OIE)의 ‘광우병 통제국’ 인정을 근거로 미국이 광우병 우려 쇠고기 수입 압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럼에도 구제역과 조류인플레인자, 광우병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검역기구, 인력, 재정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조방적·지속가능한 농업 추진을
나아가서 비용절감, 대량생산 등 효율성 위주의 기존 농업생산과 유통방식을 소비자 위주, 식품안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보다 조방적인 농업,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진해야 한다. 친환경농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소비자들도 안전하고 가축과 환경에 친화적인 농법으로 생산된 식품을 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0년 2298호 농업마당에 실린 칼럼입니다.
| 장상환 경상대 교수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처음 확인된 구제역이 경기지역까지 확산되면서 전국에 구제역 비상이 걸렸다. 올해에만 1~3월과 4~5월에 이어 세 번째 발생이다. 매번 해결책은 선제적 ‘살처분’이었고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4~5월 발생한 구제역으로 총 11개 농가에서 5만여두의 우제류가 살처분됐고, 총 1242억원의 국비가 소요됐다. 현재 살처분 대상 우제류는 15만2400여두로, 이 가운데 14만8400여두가 매몰 처리됐고 이에 소요되는 재정만 4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매번 해결책은 살처분…예외 없어
대규모의 선제적 살처분의 선진국은 영국이다. 영국에서는 2001년 당시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1000여만 마리의 가축이 도살됐고 850억 파운드(160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회복하려 한 것은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위상이었다.
백신 접종해 확산 방지 ‘합리적’
그러나 살처분이 구제역에 대해 과연 옳은 대응책인지 의문이다. 앤드류 니키포룩의 저서 ‘대혼란’에 따르면 구제역은 식품안전이나 인간의 건강을 전혀 위협하지 않는 바이러스다. 구제역에 걸리면 가축은 발과 입이 몹시 아파 먹지 못하고 나이어린 짐승은 목숨을 잃기도 하지만 치사율은 1%밖에 안된다. 대부분의 짐승은 보름 안에 건강을 회복한다. 축산이 산업화되기 이전 수백년 동안 구제역 바이러스는 대수롭지 않은 직업병 정도로 취급됐다. 병이 돌기 시작하면 농장 입구에 죽은 소의 머리를 걸어둬 가축상인이나 방문객의 접근을 막고, 소들에게 따뜻한 쇠죽과 부드러운 건초를 먹여 회복시켰다. 제대로 돌보기만 하면 병은 완치됐다. 그러다가 축산이 산업화되고 국제 교역이 확대되면서 1940년대부터 잔혹한 살처분 정책을 실시했고, 그 뒤 다른 구제역 발생국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채택했다.
2002년 유럽의회가 펴낸 진상조사보고서에 의하면 구제역이 심각한 전염병이 된 이유는 유전적 다양성의 축소와 저가 대량생산의 공장형 축산의 보편화, 늘어나는 무역량, 대형슈퍼ㆍ체인의 확대에 따른 동물의 이동량 증가 등이다. 1967년 발생 시에는 영국의 일부지구에 한정됐지만 2001년에는 겨우 2주 동안에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로 단번에 확대된 데는 이런 요인들과 관련이 있다.
소나 돼지를 열악한 환경에서 공장식으로 대량으로 사육하면 전염병이 급속히 번진다. 해외여행과 상품 무역의 확대로 바이러스 감염요소가 쉽게 유입된다. 롯데마트 통큰치킨 판매를 통해서 드러났듯이 대규모 슈퍼마켓은 농산물가격 인하 압력을 통해 공장형 축산과 농산물 수출입을 부추긴다. 그리고 대규모 살처분이 보편적 대응책이 된 이유는 식품 무역상, 농업관련 로비스트들이 다국적 축산거래에 제약이 생길까봐 살처분 조치를 지지한 때문이다.
구제역 확대에는 대규모의 예방적 살처분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구제역 발생지역 가축에 대한 백신 접종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런데 왜 백신을 사용하지 않을까? 이것도 구제역 청정국의 위상 회복이라는 허울 좋은 목표 때문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백신을 쓰면 일시적으로는 증상이 없어지나 환경이 변하거나 하면 다시 발병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축산물 수출에 어려움이 생긴다. 구제역은 근절의 대상이고 청정단계로 가는 것이 목표다”라고 한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고 농가경제를 곤경에 몰아넣는 대규모 살처분을 반복해도 구제역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축산물 수입이 수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의 경우는 백신을 접종해 확산을 막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이다.
또한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국경과 국내 지역간에 동식물 검역을 강화해야 한다. WTO 체제는 동식물검역의 기준을 국제적으로 통일함으로써 식품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국제가축보건기구(OIE)의 ‘광우병 통제국’ 인정을 근거로 미국이 광우병 우려 쇠고기 수입 압력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그럼에도 구제역과 조류인플레인자, 광우병 등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검역기구, 인력, 재정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조방적·지속가능한 농업 추진을
나아가서 비용절감, 대량생산 등 효율성 위주의 기존 농업생산과 유통방식을 소비자 위주, 식품안전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보다 조방적인 농업,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진해야 한다. 친환경농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소비자들도 안전하고 가축과 환경에 친화적인 농법으로 생산된 식품을 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0년 2298호 농업마당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