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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앵무새 강단 경제학자들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 환경정의 이사장 
    • 작성일2020/03/05 11:28
    • 조회 378
    앵무새 강단 경제학자들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 환경정의 이사장 


    나는 1965년부터 대학 강단에서 경제학 강의를 해왔고 이제 45년이 됐다. 고백하건대, 처음 25년은 잘못 가르쳤다는 생각이 든다. 피(血)가 있고 살(肉)도 있고 혼(靈魂)을 가진 사람(homo sapiens)을 놓치고 피도 눈물도 감정도 없는 합리적인 경제인(homo economious)을 상정하여 그 행위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연구하고 가르쳤다. 이른바 신고전학파 경제이론을 곧이곧대로 현실 경제현상과는 동떨어져 앵무새처럼 되새겨 왔다.  

    대학강단에서나 유효한 경제학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가 경제를 주도하고 경제의 대부분은 독과점 재벌기업의 영향 하에 있으며 나머진 지하경제가 판을 치고 있다. 시장경제란 말 뿐이고 실제로는 독과점 경직화되어 있다. 왜곡되고 경직된 경제구조를 합리화시키기는커녕 그를 감싸 안고 있는 시장경제 만능주의가 경제정책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농촌경제학, 노동경제학, 복지경제학, 환경경제학 등 비주류 경제학도들은 현상유지에 급급할 뿐 생명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더욱 경제적 약자와 취약계층의 멍에가 되고 있다.
    그런데 1998년과 2008년 불어닥친 세계적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해 주류(mainstream)경제학은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경제공학(economic technologist) 차원의 예측들이 빗나가기 일쑤이다 보니 이젠 아무도 믿지 않는다. 예측의 토대가 되는 부분적 계량분석(partial econometric analysis) 결과에 불과한 연구논문들을 누가 발주하고 인용하고 있는가? 과연 용역업자와 교수 학자간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 구분마저 모호해지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무총리는 한때 우리나라 경제학계의 촉망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의 이론과 원칙은 강단에 서 있을 때만 유효했다. 어느 경제학자들도 IMF 외환위기나 금융파생상품에 의한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식량위기, 식품안전성 위기, 환경생태계 위기, 기후변화 위기도 마이동풍식이었다.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가정 투성이의 계량경제학 모델이나 돌려서 스스로 자가 도취해온 사이 경제이론이 경제현실과 동떨어져 따로 노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 유학파 중심의 경제학 교수들은 다투어 정부당국과 대기업, 그리고 재벌 언론의 비위에 맞추어 시장경제와 신자유주의 정책이 인류를 빈곤으로부터 구제할 것이라고 찬양해왔다. 경쟁력 없는 기업과 산업은 죽어 마땅하단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농업 농촌 농민 문제는 구제할 수 없는 퇴출대상이 되고 말았다. 노동자, 중소상공인도 점차 설 자리가 좁혀지고 있다.  

    ‘좌파 딱지’에 앞다퉈 몸 사리기

    그러나 제2차 세계적 금융위기가 휩쓸면서부터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신자유주의는 죽었다. 인간적·사회적 경제학이 살아나야 한다. 정부가 적극 규제활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양식이 있는 일부 구미 경제학자들은 그런 주장을 용기있게 쏟아 내고 있다. 대한민국에선 아직도 그런 주장, 그런 사람을 ‘좌파’라고 부르기 때문인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다투어 몸을 사리고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선 신자유주의가 절대 죽지 않는다. 오히려 더 기세를 부리면 부렸지 죽을 리 없다. 부정 불법행위로 실형을 언도받은 재벌총수들이 지금 다시 활보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제 경제학이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실정에서 북유럽의 모델인 휴머니즘에 입각한 사회적 시장경제가 우선 대안으로 떠오른다. 전체 시장경제도 살리고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시장경제의 장점을 살리되 모든 사람의 행복을 중시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도 유념하는 깨끗한 정부와 사람 중심의 경제학 이론 즉, 사회적 시장경제의 새 패러다임을 찾아내야 할 때이다. 
    특히 지금 지구촌과 우리 삶 속에는 일찍이 겪지 못한 난제들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기후변화, 에너지 및 식량위기, 그리고 생태계 위기는 그 중에서도 시급히 유념해야 할 문제다. 단언컨대 신자유주의로는 이같은 글로벌한 경제 및 기후·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 사회적 시장경제와 복지, 환경의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오늘을 지탱해온 자연과 환경생태계와 뭇 생명체를 보듬어 안고 함께 공존공영하는 방법을 찾는 생명의 철학이 필요하다. 대운하 보다는 환경생태계가, 토건업자 보다는 팔당 유기농민이 더 값지고 중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보수 언론들은 이 같은 사상의 흐름에 대하여 여전히 좌파라는 낙인을 찍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둑을 허물고 하천의 생태계를 살리며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북유럽과 캐나다 등의 사람 중심, 환경생태 제일주의도 좌파란 말인가? 그런 입장과 그런 언론은 세종시 원안수정을 반대하고 4대강 대운하 사업을 반대해도 좌파라 한다. 대한민국의 천주교, 불교, 원불교, 기독교계가 온통 좌파 투성이라는 말이 된다. 이같은 메카시즘적 정치 사회 풍토 하에서 살아 숨쉬는 뭇 인간과 생명체를 살리자는 생태경제학을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사회적 시장경제 패러다임 찾아야

    이 시대에 “참 경제학”을 공부하려는 자라면 부익부 빈익빈을 어떻게 풀 것인지, 사회적 소외계층의 의료복지 교육 문화적 낙오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리고 전지구적 종말을 재촉하는 기후변화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아쉽게도 지금 우리나라 경제학자들은 용역사업하기에 너무 바쁘다. 학자라는 사람들이 밥벌이 교수직에 안주하여 돈을 받지 않으면 연구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자기 기만이고 자기모순이다. 사회적 경쟁에서 낙오하고 있는 약자들을 위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학자들이 기피당하고 있다. 직업인으로서의 교수, 보직자로서의 교수만 존재하고 진정한 선비학자가 줄어들고 있다. 참다운 애정으로 제자를 키우고 생명사상과 보편적 복지이론을 물려줄 수 있는 스승이 사라지고 있다. 공부하려는 학생도 출세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대학을 다닐 뿐이다.
    현재와 앞으로의 경제학은 환경생태학, 사회경제학, 문화경제학, 보편적 복지학 등을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경제의 가장 큰 적(敵)은 지금 이 순간도 시장경제만이 인류를 살릴 수 있다고 말하는 독과점 대기업과 극보수 상업적 언론, 개발주의에 눈이 먼 권력과 앵무새 강단 경제학자들이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0년6월28일자(제2252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