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진화와 농촌개발정책 | 임 경 수 지역재단 자문위원,「이장」 대표
- 작성일2020/03/0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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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진화와 농촌개발정책
임 경 수 | 지역재단 자문위원,「이장」 대표
진화론은 생물의 장기적인 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분야로, 18세기 말 다윈에 의해 주장되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라마르크에 의해 무기물에서 자연 발생한 미소한 원시적 생물이 그 구조에 따라 저절로 발달하여 복잡하게 된다는 전진적 발달설과, 습성에 의해 획득된 형질이 유전함으로써 발달한다는 종 발달설을 체계화하면서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진화론은 몇 가지 이론의 결함으로 창조론에 의해 비판을 받고 있으며, 하나의 이론이라기보다 가설로 보고 있는 생물학자도 있습니다. 이러한 진화론을 생물의 발달이나 종 다양성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적 도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진화론을 이러한 이론적 도구로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지식진화”입니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몸담고 계시던 과학철학자 장회익 선생님에 따르면, 지식과 학문의 발전 과정을 진화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다양한 경로에 의해 종의 유전형질이 변화하게 되고, 특정한 유전형질에 의한 표현형질이 변화한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면서 새로운 종으로 발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전형질과 표현형질의 관계를 적용하여 지식과 학문의 발달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지식진화”입니다.
지식과 학문에도 유전형질의 창고(pool)와 표현형질의 창고(pool)가 있고, 환경 변화에 따라 유전형질의 창고와 표현형질의 상호관계에 의해 새로운 지식이 생겨나기도 하고 인정 받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이야기를 하자면, 지식에 있어서도 유전형질의 창고가 풍부해야 지식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지식이 생겨날 수도 있고 학문적 패러다임도 전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지식이나 학문적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토양으로서 유전형질의 창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진화 이론을 농촌개발정책에 도입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냐 하면 농촌개발정책의 외부적 환경 변화가 매우 급격하기 때문에 어느 특정 시기에 적합한 정책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에 맞지 않거나, 보편적이라고 생각한 정책도 특정 지역에서는 도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농촌과 관련된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예측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제 국내시장뿐 아니라 국제시장과 국제 정치역학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네바관세협정(GATT :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에서 자유무역협정(FTA : Free Trade Agreement)까지 그 변화는 그야말로 급격합니다. 둘째, 농촌개발정책의 대상이 농민뿐 아니라 도시민까지 확대되면서 도시환경과 도시민의 의식변화마저도 농촌개발정책의 고려 대상이 되었습니다. 도시환경의 악화가 농촌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고 있고 이에 따라 웰빙(Well-Being), 다운 시프트(Down-Shift), 로하스(LOHAS :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등의 이전과 다른 새로운 가치 기준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셋째, 농업·농촌관련 정책과 지역개발 관련 정책 환경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농업·농촌관련 정책은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농업개발에서 농업·농민·농촌을 함께 고려하는 지역 중심의 정책으로 변화하고 있고, 중앙정부 주도적 정책에서 지자체 중심의 정책으로, 행정 주도적 정책에서 주민 주도적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농촌개발정책의 외부적 환경 변화가 급격하기 때문에 특정한 내용과 방식, 절차를 따라 추진하는 정책을 계획하여 실행하기보다는 새로운 내용과 방식, 절차를 가지는 다양한 정책이 시도되면서 이러한 시도들의 장점을 살려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즉, 지식진화와 같이 농촌개발정책도 발전, 진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농어촌복합공간조성사업’이라 하여 도시민을 농어촌에 유입하고자 하는 정책을 농촌개발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실, 농촌에 도시민을 유입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귀농운동이라 하여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는 중앙정부의 특별한 지원이 없었지만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귀농에 대해 IMF 기간에 중앙정부가 일부 지원책을 만들기는 했지만, IMF의 어려운 경제생활로 농어촌으로 인구가 유입하는 일시적인 현상에 대처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IMF 이후에도 농어업, 농어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혹은 지역발전을 위해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는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를 하였고, 이러한 노력에 의해 현재 도시민의 농어촌 유입과 관련한 풍부한 사례와 경험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민간과 지역의 노력으로 도시민의 농어촌 유입과 관련해서 유전형질의 저장소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농어촌복합공간조성사업과 관련한 연구과제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민간과 지역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사례와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지식진화와 같이 농촌개발정책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중앙정부는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하면 됩니다. 농촌개발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해야 하는 몫은 지역과 민간입니다. 지금과 같이 중앙정부가 지원정책의 내용과 방법, 절차를 규정하고 지역 상황과 정서에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규정을 따라야 하는 ― 심지어 이 과정은 폭력적이기도 합니다 ― 현재의 농촌개발정책이 변화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주)이장에서 발행하는 월간 이장 2006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임 경 수 | 지역재단 자문위원,「이장」 대표
진화론은 생물의 장기적인 변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분야로, 18세기 말 다윈에 의해 주장되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라마르크에 의해 무기물에서 자연 발생한 미소한 원시적 생물이 그 구조에 따라 저절로 발달하여 복잡하게 된다는 전진적 발달설과, 습성에 의해 획득된 형질이 유전함으로써 발달한다는 종 발달설을 체계화하면서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하지만 진화론은 몇 가지 이론의 결함으로 창조론에 의해 비판을 받고 있으며, 하나의 이론이라기보다 가설로 보고 있는 생물학자도 있습니다. 이러한 진화론을 생물의 발달이나 종 다양성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적 도구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진화론을 이러한 이론적 도구로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지식진화”입니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몸담고 계시던 과학철학자 장회익 선생님에 따르면, 지식과 학문의 발전 과정을 진화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다양한 경로에 의해 종의 유전형질이 변화하게 되고, 특정한 유전형질에 의한 표현형질이 변화한 환경에 보다 잘 적응하면서 새로운 종으로 발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전형질과 표현형질의 관계를 적용하여 지식과 학문의 발달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지식진화”입니다.
지식과 학문에도 유전형질의 창고(pool)와 표현형질의 창고(pool)가 있고, 환경 변화에 따라 유전형질의 창고와 표현형질의 상호관계에 의해 새로운 지식이 생겨나기도 하고 인정 받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이야기를 하자면, 지식에 있어서도 유전형질의 창고가 풍부해야 지식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지식이 생겨날 수도 있고 학문적 패러다임도 전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지식이나 학문적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토양으로서 유전형질의 창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식진화 이론을 농촌개발정책에 도입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냐 하면 농촌개발정책의 외부적 환경 변화가 매우 급격하기 때문에 어느 특정 시기에 적합한 정책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에 맞지 않거나, 보편적이라고 생각한 정책도 특정 지역에서는 도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농촌과 관련된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고 예측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제 국내시장뿐 아니라 국제시장과 국제 정치역학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네바관세협정(GATT : 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에서 자유무역협정(FTA : Free Trade Agreement)까지 그 변화는 그야말로 급격합니다. 둘째, 농촌개발정책의 대상이 농민뿐 아니라 도시민까지 확대되면서 도시환경과 도시민의 의식변화마저도 농촌개발정책의 고려 대상이 되었습니다. 도시환경의 악화가 농촌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고 있고 이에 따라 웰빙(Well-Being), 다운 시프트(Down-Shift), 로하스(LOHAS :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 등의 이전과 다른 새로운 가치 기준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셋째, 농업·농촌관련 정책과 지역개발 관련 정책 환경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농업·농촌관련 정책은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농업개발에서 농업·농민·농촌을 함께 고려하는 지역 중심의 정책으로 변화하고 있고, 중앙정부 주도적 정책에서 지자체 중심의 정책으로, 행정 주도적 정책에서 주민 주도적 정책으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농촌개발정책의 외부적 환경 변화가 급격하기 때문에 특정한 내용과 방식, 절차를 따라 추진하는 정책을 계획하여 실행하기보다는 새로운 내용과 방식, 절차를 가지는 다양한 정책이 시도되면서 이러한 시도들의 장점을 살려 급격한 환경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즉, 지식진화와 같이 농촌개발정책도 발전, 진화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농어촌복합공간조성사업’이라 하여 도시민을 농어촌에 유입하고자 하는 정책을 농촌개발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사실, 농촌에 도시민을 유입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귀농운동이라 하여 이미 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하기 시작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는 중앙정부의 특별한 지원이 없었지만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귀농에 대해 IMF 기간에 중앙정부가 일부 지원책을 만들기는 했지만, IMF의 어려운 경제생활로 농어촌으로 인구가 유입하는 일시적인 현상에 대처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IMF 이후에도 농어업, 농어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혹은 지역발전을 위해 민간이나 지방자치단체는 끊임없는 노력과 시도를 하였고, 이러한 노력에 의해 현재 도시민의 농어촌 유입과 관련한 풍부한 사례와 경험을 확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민간과 지역의 노력으로 도시민의 농어촌 유입과 관련해서 유전형질의 저장소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농어촌복합공간조성사업과 관련한 연구과제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민간과 지역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사례와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지식진화와 같이 농촌개발정책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중앙정부는 진화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만 조성하면 됩니다. 농촌개발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해야 하는 몫은 지역과 민간입니다. 지금과 같이 중앙정부가 지원정책의 내용과 방법, 절차를 규정하고 지역 상황과 정서에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규정을 따라야 하는 ― 심지어 이 과정은 폭력적이기도 합니다 ― 현재의 농촌개발정책이 변화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은 (주)이장에서 발행하는 월간 이장 2006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