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와 공영방송 | 윤석원 중앙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0:55
- 조회 391
고구마와 공영방송
| 윤석원 중앙대 교수
몇해전 일본에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TV(NHK) 다큐멘터리 한편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고구마’에 관한 것이었다. ‘쌀‘도 아닌 ‘고구마’가 얘기의 주인공이라서 한 시간 정도 열심히 시청한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이렇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당시 모든 공장이 파괴되어 경제가 마비되었고, 식량마저도 조달이 안되어 아사자가 속출하였을 때, 그나마 국민들의 굶주림을 채워주었던 소중한 작물이 바로 ‘고구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일본은 주지하다시피 주식인 ‘쌀’마저도 남아돌아 생산조정을 하고 있는 마당에 ‘고구마’가 뭐 그리 대단한 작물이라고, 한 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공영방송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그 소중함을 알리는 것일까라며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KBS가 미국산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고 정부가 협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26일 방영된 KBS의 과학카페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철저한 검역 과정을 거친 안전한 쇠고기만 수입”이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마장동 농축산물시장에서 수입 쇠고기가 거래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됐고 수출 국가별 자체 검역과정, 부산항 도착, 경기도 광주의 냉동창고 검역 과정,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정밀 검사과정을 차례로 보여주었다고 한다. 또 수입육 레스토랑과 요리 전문가를 화면상에 보이며 “철저한 검역과 꼼꼼한 정밀 검사를 거쳐 믿고 먹을 수 있는 수입 쇠고기, 그 담백한 매력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라는 홍보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미쇠고기 홍보 나선 정부와 KBS
어떤 연유에 의해서 이런 방송을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KBS(외주업자)와 정부의 합작품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것은 비겁하다. 알다가도 모를 일은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온통 나라를 들쑤셔 놓았고 대통령이 국민 앞에 두 번씩이나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게 한 장본인들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성하며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모든 책임이 MBC의 PD 수첩이라는 프로그램에 있다고 아직도 항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U는 아직도 미쇠고기 수입 안해
문제는 그렇게 TV의 영향력이 크다고 보는 정부가 그것도 공영방송인 KBS에서 노골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비굴하게 홍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관계에 있어서도 아직까지 미국과 일본은 2년이 넘도록 쇠고기 협상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있고, 얼마 전 대만이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타결시켰지만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일부 광우병위험부위(SRM)는 수입을 금지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하였다. 어찌되었든 아직도 EU 국가들은 WTO에 제소 당하면서 까지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있다. 이들 국가들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기만 하면 모두 광우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갱이를 벌이고 있는 것은 과학적 사실을 뛰어 넘는 국민적 정서와 국가적 체면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공영방송은 최소한의 국가적 자존심도, 국민적 정서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뿐만 아니라 개방화 시대를 힘겹게 헤쳐 나가고 있는 우리의 농민과 농업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한다면 정부와 공영방송이 앞장서서 그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외국 농축산물과 경쟁하여 한 푼이라도 소득을 높일 수 있을 것인지를 노심초사하는 이들에게 경쟁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남의 나라 쇠고기를 정부와 공영방송이 나서서 홍보해주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최소한의 국가적 자존심 지켜야
한 번의 방송으로 얼마나 영향이 있겠는가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PD수첩 때문에 그 엄청난 촛불집회가 발생하였다고 판단하는 정부가 아닌가. 무엇보다 그런 발상을 한 것 자체가 한심한 노릇이다. 어느 나라 정부며 어느 나라 공영방송이냐고 항의하는 농민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공영방송과 정부가 진정 우리의 농민, 농업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남의 나라 농축산물이나 식품을 옹호하거나 홍보하는 것이 아니다. 남의 나라 농축산물을 무조건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공영방송은 우리의 어려운 농업과 농촌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일과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농민들의 노력을 더욱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구마도 얼마나 소중한 국가적 자산인가를 인식하는 정부와 공영방송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것이 국민적 정서와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 한국농어민신문 2010년2월12일자 (제2216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 윤석원 중앙대 교수
몇해전 일본에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TV(NHK) 다큐멘터리 한편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고구마’에 관한 것이었다. ‘쌀‘도 아닌 ‘고구마’가 얘기의 주인공이라서 한 시간 정도 열심히 시청한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의 주제는 이렇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은 당시 모든 공장이 파괴되어 경제가 마비되었고, 식량마저도 조달이 안되어 아사자가 속출하였을 때, 그나마 국민들의 굶주림을 채워주었던 소중한 작물이 바로 ‘고구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일본은 주지하다시피 주식인 ‘쌀’마저도 남아돌아 생산조정을 하고 있는 마당에 ‘고구마’가 뭐 그리 대단한 작물이라고, 한 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공영방송을 통하여 국민들에게 그 소중함을 알리는 것일까라며 많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인 KBS가 미국산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고 정부가 협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를 놀라게 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26일 방영된 KBS의 과학카페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철저한 검역 과정을 거친 안전한 쇠고기만 수입”이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마장동 농축산물시장에서 수입 쇠고기가 거래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됐고 수출 국가별 자체 검역과정, 부산항 도착, 경기도 광주의 냉동창고 검역 과정,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정밀 검사과정을 차례로 보여주었다고 한다. 또 수입육 레스토랑과 요리 전문가를 화면상에 보이며 “철저한 검역과 꼼꼼한 정밀 검사를 거쳐 믿고 먹을 수 있는 수입 쇠고기, 그 담백한 매력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라는 홍보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미쇠고기 홍보 나선 정부와 KBS
어떤 연유에 의해서 이런 방송을 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KBS(외주업자)와 정부의 합작품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것은 비겁하다. 알다가도 모를 일은 2008년 광우병 파동으로 온통 나라를 들쑤셔 놓았고 대통령이 국민 앞에 두 번씩이나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하게 한 장본인들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자성하며 부끄러워하기보다는 모든 책임이 MBC의 PD 수첩이라는 프로그램에 있다고 아직도 항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U는 아직도 미쇠고기 수입 안해
문제는 그렇게 TV의 영향력이 크다고 보는 정부가 그것도 공영방송인 KBS에서 노골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비굴하게 홍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실관계에 있어서도 아직까지 미국과 일본은 2년이 넘도록 쇠고기 협상을 마무리 하지 못하고 있고, 얼마 전 대만이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을 타결시켰지만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일부 광우병위험부위(SRM)는 수입을 금지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하였다. 어찌되었든 아직도 EU 국가들은 WTO에 제소 당하면서 까지도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고 있다. 이들 국가들도 미국산 쇠고기를 먹기만 하면 모두 광우병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다 알고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갱이를 벌이고 있는 것은 과학적 사실을 뛰어 넘는 국민적 정서와 국가적 체면 때문이다. 우리 정부와 공영방송은 최소한의 국가적 자존심도, 국민적 정서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뿐만 아니라 개방화 시대를 힘겹게 헤쳐 나가고 있는 우리의 농민과 농업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한다면 정부와 공영방송이 앞장서서 그들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기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외국 농축산물과 경쟁하여 한 푼이라도 소득을 높일 수 있을 것인지를 노심초사하는 이들에게 경쟁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남의 나라 쇠고기를 정부와 공영방송이 나서서 홍보해주는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최소한의 국가적 자존심 지켜야
한 번의 방송으로 얼마나 영향이 있겠는가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PD수첩 때문에 그 엄청난 촛불집회가 발생하였다고 판단하는 정부가 아닌가. 무엇보다 그런 발상을 한 것 자체가 한심한 노릇이다. 어느 나라 정부며 어느 나라 공영방송이냐고 항의하는 농민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공영방송과 정부가 진정 우리의 농민, 농업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은 남의 나라 농축산물이나 식품을 옹호하거나 홍보하는 것이 아니다. 남의 나라 농축산물을 무조건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공영방송은 우리의 어려운 농업과 농촌의 현실을 제대로 알리는 일과 그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농민들의 노력을 더욱 알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고구마도 얼마나 소중한 국가적 자산인가를 인식하는 정부와 공영방송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것이 국민적 정서와 국가적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 한국농어민신문 2010년2월12일자 (제2216호)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