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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농정 선진화와 사회적 합의 |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0/03/05 10:54
    • 조회 366
    농정 선진화와 사회적 합의
    |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 


    외환위기 이후 10년 만에 닥쳐온 세계적 경기후퇴의 여파로 참으로 힘들었던 기축년을 보내고 용맹의 상징인 호랑이해 경인년 새해가 밝았다.

    정부는 올해 농정운용 기본방향을 농어업 선진화의 가속화, 미래에 대비한 농어업의 체질강화, 농어촌 삶의 질 향상에 두고 근본적인 쌀 대책의 수립, 협동조합개혁의 마무리, 농어촌 서비스 기준의 도입 등을 중점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무쪼록 새해에는 호랑이의 기백이 농정 성과에도 반영돼 시장개방에 따른 경쟁력 약화, 농가소득 및 경영불안, 고령화와 농촌지역의 쇠퇴 등 농업·농촌이 안고 있는 악순환 구조를 단절하고, 경제효율과 사회적 형평 및 환경보전이 조화된 선순환 구조의 기틀을 짜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농업·농촌에 대한 2009년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10년 후의 농업과 농촌생활이 희망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전문가 40.6%, 농업인 20.2%인데 비해 비관적으로 전망한 비율은 전문가 31.3%, 농업인 49.7%로 매우 대조적인 인식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정책수요의 최우선 순위에서 농업인은 경영안정대책, 도시민은 안전한 식품공급, 전문가는 후계인력 육성을 각각 주문하고 있어 상당한 견해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재원배분과 관련해서도 농업인은 연금지원과 직불제 확대를 요구하는 반면 전문가들은 농산물 안전성과 후계인력 육성 등 장기대책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어 농업·농촌의 현실인식과 정책 우선순위 설정을 놓고 보다 활발한 정보교류와 의견수렴이 요구된다. 세계적인 시장개방과 무한경쟁의 흐름 속에서 농업·농촌을 지속·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생산자와 정책당국뿐 아니라 식품산업·소비자·납세자 등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한 관련분야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정사안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을 넘어 사회 전체의 관점에서 농업·농촌이 지니는 다원적 공익기능을 살려 나가려면 관련 주체들간의 합리적인 역할 및 책임분담이 이뤄져야 한다. 농업인은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고, 소비자는 고품질인 국산농산물 구입에 수입농산물과 차별화된 가격을 지불하고, 납세자는 농업인의 소득보전과 국토환경유지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직불제의 재원을 부담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최근 크게 강조되고 있는 윤리경영·환경경영을 포함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란 개념에 비견되는 ‘농업의 사회적 책임’이 제대로 수행될 때 개방체계 아래서도 경제적·사회적·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이 유지 발전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농업·농촌의 선진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투자확대나 정책지원 강화에 앞서 농업·농촌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는 관련 주체들의 의식전환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최근 농정의 핵심 이슈를 이루고 있는 쌀문제, 농협개혁, 농정 거버넌스 등의 논의에서 봉착하고 있는 여러가지 어려움도 근본적으로는 서로간의 신뢰부족과 집단 이기주의의 악순환에서 비롯된 결과일 뿐이다. 경인년 새해에는 농업·농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모든 당사자가 사소한 기득권을 버리고, 공동목표의 달성을 위한 진솔한 대화와 합의노력에 획기적인 진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 본 게시물은 농민신문 2010년 1월 1일자에 실린 내용입니다.